대학 시절 운동권 경험을 시작으로 한국사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온 물리학자 이종필은 여러 매체에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관한 글을 기고했고 「오마이뉴스」 시민 기자 편집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지난달 21일 출간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는 「오마이뉴스」 과학 부문 기획기사 연재물을 엮어 만든 것으로, 그동안 저자가 보여준 사회 비판적인 시각이 충실히 담겨 있는 독특한 책이다. 저자는 자연과학적 지식, 특히 물리학적 개념을 인문, 사회현상에 적용, 분석한다. 저자는 “대한민국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문과와 이과의 구분이 엄격하다”며 “그 장벽은 단지 ‘불필요한 대상’이 아니라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러 문제점을 찾아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 정치분야 종사자들이 가지고 있던 비과학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가 인문사회 분야에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과학’은 과학 지식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 능력이다. 저자는 정치인이나 대통령이 방대한 물리학적 지식을 습득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이 과학적으로 사고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BBK 사건 처리에 대해 논할 때 저자의 생각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무질서의 정도를 나타내는 ‘엔트로피’ 개념을 활용해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꼬집는다. 어떤 영역에서건 내부적인 원인으로 낮은 엔트로피가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드물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예상치 못할 정도로 낮은 엔트로피가 나타나면 반드시 외부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저자는 “BBK사건은 낮은 엔트로피가 발생한 것과 매우 유사한 사건이었지만 외부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검찰의 노력은 없었다”고 지적한다. 검찰의 발표대로라면 (주)다스는 자사의 순익보다 훨씬 큰 금액을 잘 알지도 못하는 김경준에게 투자한 꼴이 되고, 따라서 그 일이 일어날 확률은 매우 낮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검찰의 발표는 그 일이 다스와 김경준의 관계 외부에 있던 이명박에 의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점은 전혀 고찰하지 못했다. 저자는 검찰이 발표한 내용에 치명적인 논리적 결함이 있었음을 밝히고, 나아가 합리성이 결여돼 있는 검찰의 발표는 휴지조각에 불과하다며 권력계의 세태를 강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우리가 지나쳤던 여러 정치현상들을 과학적 방법론의 요소에 대응시키면 그 본질을 잘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확고한 체계를 갖춘 과학 이론은 그것을 전복시킬 만한 내용을 담고 있는 관찰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쉽게 부정되지 않는다. 관찰 결과에 오류가 없는지를 먼저 살피기 때문이다. 이회창 후보가 1997년 대선을 치를 당시 아들의 병역문제는 후보 사퇴로 이어질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그가 김대중 후보를 바짝 따라 붙을 수 있었던 이유는 좌파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던 김대중보다 나은 대통령감이란 인식이 세간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장대익 교수(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는 “탄탄한 이론 물리학으로 무장한 저자는 한국사회를 향한 뜨거운 애정을 가지고 전공을 통해 문제들을 짚어보려는 통섭적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며 “이 책은 왜 지금 당장 과학적 마인드가 필요한지를 깨닫게 해준다”고 이 책의 의의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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