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에 열린 한 페미니즘 워크숍에서 정항균 교수(독어독문학과)는 포르노그래피의 유해성과 관련된 담론이 이어지는 와중에 ‘잡생각’을 한다. 포르노그래피의 본질적 특징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한 그는 ‘반복’이라는 답을 찾아낸다.

지난달 30일 출간된 『시시포스와 그의 형제들』에는 정항균 교수가 탐구해온 반복에 대한 고찰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다. 반복이 함축하는 창조적인 생산성에 주목한 저자는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영원회귀의 신화』에 등장하는 ‘원형의 반복’에서부터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이 논의한 ‘차이의 반복’까지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신화의 시대에서 반복은 긍정적 의미를 지녔다. 엘리아데는 『영원회귀의 신화』를 통해 원시인들은 “하나의 원형을 모방하거나 반복하고 있는 한에서만 실재적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원시인들에게는 정기적 의례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행위가 어떤 신이나 영웅, 조상에 의해서 행해진 행위를 정확하게 반복하는 한에서만 행위로서의 유효성, 즉 신화적 구원을 획득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그렇기에 원시인들의 삶은 고리타분해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동일한 것을 반복하는 매 순간이 축전과도 같은 구원의 순간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인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반복은 동일성의 반복이 아니라 차이 자체의 반복이며 이러한 반복은 끊임없이 ‘새로운 차이’들을 생성해 낸다”고 주장한다. 동일성의 반복을 부정하는 동시에 차이의 반복을 긍정한 것이다. 그의 반복은 과거에 대한 단순한 회상이나 습관적인 반복과는 거리가 먼 급진적인 반복이다.

창조적인 반복의 모티브는 문학에서도 나타난다. 페터 한트케의 소설 『반복』에서 드러나는 ‘반복의 시학’이 그러한데, 작가는 모티브를 반복해 사용했고 텍스트 전체를 반복의 원칙에 따라 구성했다. 소설의 주인공인 필립은 한 여관방에 들어서자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이미 본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는 이를 고향에 돌아왔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유년기에 동경했던 장면을 본 것이라고 여긴다. 한트케는 이처럼 이상적인 순간을 반복함으로써 과거에 실현되지 못했던 가능성을 실현해 나가는 미래 지향적인 반복을 구현한다. 저자는 “이 반복의 시학은 그것이 지니는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특성 때문에 들뢰즈의 철학과 연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한트케는 사건의 서술 대신 사물의 묘사에 전념했다. 사건은 연쇄적인 인과관계를 지닌 이야기로서 현실적인 재현의 차원에서 이해된다. 그러나 사물은 맥락에서 자유롭기에 현실에서 재현되지 않는 ‘잠재적인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항균 교수는 서문에서 “이 책이 서론에서 시작해 결론으로 끝맺지 않는 것 역시 선형적인 글쓰기를 조금이나마 피하려는 의도”라고 밝혔다. ‘창조적 반복’에 대한 그의 열정은 책의 구성에서도 살뜰히 드러난다. 이 책은 반복 모티브로 현대 문학과 철학을 일이관지(一以貫之)해 시원하게 읽히지만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다 보니 그 설명이 친절하지는 못하다. 들뢰즈의 철학을 15페이지만으로 풀어내기에는 아무래도 버거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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