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지원금 지급, 일본-보조인 제도, 독일-NGO활동
장애인 성에 대한 논의조차 없는 한국
성 향유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 이끌어 내는 것이 급선무

장애인의 성 향유 권리만 놓고 본다면 한국은 걸음마 단계의 국가다. 성에 대해 개방적인 국가에서는, 우리의 시각에서 볼 때 다소 급진적인 방식으로 장애인의 성 향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나서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각종 도우미 제도를 두고 있다. 독일은 시민단체들이 각종 프로그램을 실행해 장애인들의 성 향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지원금을 제공하는 네덜란드=네덜란드에는 ‘선택적인간관계재단(SAR)’이라는 단체가 있다. 1980년대에 장애인에 의해 설립된 이 단체는 혼자서는 성욕을 해결할 수 없는 장애인에게 섹스 파트너를 파견해주거나 옆에서 같이 잠만 자주는 사람을 유료로 파견하는 등의 업무를 한다.

매년 2천명 이상의 장애인이 이 단체를 이용하고 있으며 이용자의 60% 가량은 정신지체 장애인, 나머지는 신체 장애인이다. 이용자를 성별로 구분해 보면 전체 이용자의 90% 이상이 남성 이용자로 여성 이용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네덜란드의 각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이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지불한 서비스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혼자서는 성욕을 해소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장애인 중 일정 소득 이하인 자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서비스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네덜란드가 이와 같이 급진적인 정책을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 대다수가 칼뱅주의 기독교 신자인 것이 한 몫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문제에 있어서 보수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가톨릭과는 달리 칼뱅주의 기독교는 보다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진보적인 노동당 내각이 계속 집권하면서 장기간에 걸쳐 적극적인 사회보장이 이뤄져 온 것도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민간 차원에서 지원 활동을 벌이는 일본과 독일=일본과 독일, 두 나라는 네덜란드만큼 급진적이진 않지만 민간 차원에서 활발한 활동을 진행한다. 일본에서는 성생활 보조인 제도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이들 성생활 보조인은 장애인에게 보조기구를 전달하거나 자위 행위를 도와주는 일 등을 한다.

독일은 시민단체들이 장애인의 성 향유 권리 보장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례로 ‘독일 장애인 자기결정 연구소’에서는 성적으로 소외된 장애인들에게 연애의 기술과 성에 관한 이론 교육을 하고 있다. 연구소에서는 ‘에로틱 워크숍’이라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데 신체적 장애인들은 성 경험을 얻기 위해, 정신적 장애인들은 성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참가한다.

◇한국의 선택은?=한국 사회에도 이와 같은 급진적 제도가 도입될 수 있을까.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은종근 정책실장은 “성 자원봉사가 제도적으로 정착된 네덜란드는 오랜 기간 장애인들의 성생활 문제가 끊임없이 공론화돼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상황”이라며 “장애인의 성에 대해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이와 같은 정책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성급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섹스 자원봉사 제도화보다 시급한 것은 성 향유권에 대한 동의를 사회 전반으로 확장시키는 일”이라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후에 성 자원봉사 등 구체적인 제도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장애인푸른아우성’ 조윤경 대표도 “한국의 장애인들은 아직까지 본인의 성 향유권에 대한 의식조차 부족한 상태”라며 “전체 장애인 사회가 성 향유권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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