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퍼홀릭(Shopa holic). 최근 극장가를 장식했던 화려한 색채의 포스터 속에서 쏟아지는 쇼핑백들과 싸우고 있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의 모습이다. 안타깝게도 유행에 목을 매고 신상품에 열광하는 수많은 20~30대 여성들은 쇼퍼홀릭의 우스꽝스러운 중독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비단 쇼퍼홀릭 뿐일까. 요즈음 우리는 모두 어디엔가 빠져있다.

20여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중독’이라는 단어는 오늘날과는 다른 용법으로 쓰였다. 중독(中毒)이라는 두 글자에서 사람들은 알코올, 헤로인, 도박 등 해로운 것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2009년, 쇼퍼홀릭을 자처하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중독’은 바로 유행 그 자체다. ‘홀릭’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워커홀릭, 러브홀릭, 쇼퍼홀릭. 이제 ‘홀릭’이라는 단어는 폭발하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단어들과 만나 새롭고 역동적인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게 홀릭이 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창피한 일이 아닌 당당한 개성이 됐다.

중독이 중독자에게 가져다 주는 가장 궁극적인 행복은 편안함이다. 사람들은 편안함에 약한 면모를 보인다. 오죽하면 편안함을 위해 각종 문명과 기술들을 이렇게 발달시켰을까. 하지만 편안함을 추구하기 위한 발전은 아이러니하게도 불편함을 가져왔다. 21세기 인류는 편안한 사회가 가져온 공허한 시간과의 불편한 싸움 속에서 헤매고 있다. 즐길 것은 많고 할 일을 주지 않는 사회에서 유난히 고독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은 젊은 층이다. 그들에게 ‘중독’이라는 울타리는 낯선 광장과도 같이 막막한 시간과 그 속에 홀로 선 ‘나’ 사이의 빈틈을 메워준다. 홀릭에 대한 열망은 결국 안정에 대한 갈망인 것이다.

끝없는 취업활동과 고시준비에 치이며 너무나 오랜 시간 학교에 머무르는 20대들. 적은 보수를 위해 사회 속 피라미드의 하층부에서 항상 고전하는 30대들에게 공허함은 매일 저녁 밀물처럼 몰려와 턱밑까지 차오른다. 빈 손을 털렁이며 고단한 하루를 이고 돌아오는 귀가길에는 휑한 머릿속을 헤집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마음이 번잡하고 가난하다. 그래서 그들은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들에 지배받는 쪽을 택한다. 기꺼이 어느 것에 중독돼 중독이 주는 시시한 감상이 몰두하는 법을 배워간다.

지배를 받는 것은 편안한 일이다. ‘중독’이라는 편안한 구속 속에서 우리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버리고 하루치의 미소와 행복을 구한다. 그러나 결국 중독은 중독일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독(毒)이라는 글자가 담고 있는 모든 괴로움과 근심, 외로움은 여전히 중독자들을 해치고 있다. 가끔은 미쳐볼지언정 쉽게 끌려 다니는 타성에 스스로를 내팽겨치지 말자. 중독이 주는 편안함의 껍질을 깨고 때로는 불편함과 함께 사는 방법도 찾아보자.


신윤경
국제대학원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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