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액세스 운동에서 ‘S-SPACE’까지
최근 국내에서도 오픈 액세스 운동 확산되는 추세 2002년 2월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 누구나 무료로 학술논문을 이용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은 ‘오픈 액세스 운동(Open Access Movement)’의 헌장이라 할 수 있는 ‘BOAI(Budapest Open Access Initiative) 선언’에 서명했다. 오픈 액세스를 “누구나 재정적, 법률적, 기술적 장벽 없이 인터넷을 통해 학술논문을 무료로 읽고, 다운로드 받고, 배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라고 규정한 BOAI 선언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오픈 액세스 저널(Open Access Journal, OAJ)과 셀프아카이빙(Self-archiving)이라는 두 가지 전략을 제시했다.
저작권 귀속 주체 등 전반적인 저작권 체계 확립되고
‘S-SPACE’에서도 다른 DB와의 공유 방안 모색돼야
OAJ는 인터넷을 통해 저작권 제한 없이 논문을 이용할 수 있는 저널을 가리킨다. 셀프아카이빙이란 저자가 논문을 ‘오픈 액세스 아카이브(Open Access Archive, OAA)’라 불리는 논문저장소에 직접 업로드 하는 것을 말한다. 오픈 액세스 운동은 지식 유통의 장벽을 허물고 논문 인용도를 높여 일반인과 연구자 모두에게 환영받고 있다. 지난 7년간 오픈 액세스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오픈 액세스 공간은 꾸준히 확장되고 있다.
◇연구기관의 적극적인 지원 없인 OAJ 확산 힘들어=국내에서도 오픈 액세스 운동이 확산되는 추세다. 지난 3월에는 국내 최초로 ‘IBC(Interdisciplinary Bio Central)’라는 오픈 액세스 국제학술지가 창간됐다. ‘IBC’는 융합 생명과학 분야의 논문을 온라인으로 발간한다. ‘IBC’ 초대 편집장인 남홍길 교수(포항공대 생명과학과)는 “과학 지식이 과학자만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개방, 공유돼야 한다는 생각에 저널을 창간했다”고 말했다. ‘IBC’ 사무국 윤경순 팀장은 “현재 ‘IBC’의 지명도를 높이는 데 노력을 쏟고 있고 SCI 등재를 모색하는 등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헌정보학 분야에서는 한국도서관협회가 발간하는 「도서관문화」를 포함한 4종의 학술지가 OAJ로 전환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학계 전반에서 새로운 OAJ를 창립하고 기존 학술지를 OAJ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은 미미한 실정이다. 윤희윤 교수(대구대 문헌정보학과)는 「국내외 문헌정보학 학술지의 오픈 액세스 동향 분석」(2007)에서 “현재 국립 연구소나 대학 등 연구기관 차원에서 연구자를 오픈 액세스 운동에 참여하도록 유인할 만한 제도적 장치가 전무하다”고 비판했다. 대학의 연구업적 평가 시스템이나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OAJ를 권장하거나 국가가 OAJ를 구축, 유지하는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OAJ는 구독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연구자들의 논문 게재비로 운영되고 이는 OAJ 활성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학술진흥재단(학진) 학술정보팀 정종근 연구원은 “현재까지 정부 차원에서 OAJ를 지원하거나 OAJ에 논문을 게재한 연구자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는 검토된 바 없다”고 말했다.
◇관(官) 주도 OAA 구축, 비판도 만만찮아=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오픈 액세스 저널에 비해 오픈 액세스 아카이브 구축은 정부,대학, 학계를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학계에서는 2006년 서울대 물리학연구정보센터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이 공동으로 개발한 ‘Science Attic(과학다락방)’이 국내 OAA로는 최초로 ‘openDOAR’에 등록됐다. 영국 노팅엄대가 개발한 ‘openDOAR’은 국제적으로 공신력 있는 논문저장소 검색사이트다. 학진은 오픈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오픈 액세스 포럼을 창립해 오픈 액세스와 관련된 학술적, 사회적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정종근 연구원은 “학진은 저작자만 동의하면 일반인들에게 논문을 공개할 계획이며 장기적으로는 국제적 기준을 따르는 OAA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 대학 중에는 서울대와 카이스트가 각각 ‘S-SPACE’와 ‘KOASAS’라는 OAA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와 대학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OAA 구축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의회 권대우 회장은 “한국은 아직 학자들의 지적 창조물에 대한 적절한 보상 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정부나 대학의 오픈 액세스에 대한 강요가 저작권료마저 앗아갈 수 있다”고 비판했다. 민간업체들이 구축한 온라인 데이터베이스(DB)가 적절히 활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기관이 다시 세금을 들여 새로운 DB를 구축하는 것은 낭비라는 지적도 있다. 누리미디어 유정훈 이사는 “폭리를 취한다는 비판을 받는 해외의 일부 업체와 달리 국내 DB 업체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온라인 DB를 공급하고 있다”며 “온라인 DB 시스템을 새로 구축하는 것보다 공공기관이 기존의 온라인 DB를 구입해 국민에게 공급하는 것이 좀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S-SPACE 활발한 운영 위해서는 저작권 문제 해결돼야=지난해 12월부터 운영되고 있는 S-SPACE는 조금씩 활기를 띠고 있지만 아직 보완돼야 할 부분도 많다. 5개월 만에 다운로드수가 2만 건을 돌파했지만 단과대별로 나뉜 19개 항목 중에서 논문이 하나도 등록되지 않은 항목이 12개에 달한다. 중앙도서관 김미향 전자지원실장은 “아직 S-SPACE의 인지도는 매우 낮다”며 “교수들의 참여가 늘어나야만 S-SPACE가 활성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들의 참여를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번거로운 업로드 과정이다. 저자가 논문 저작권을 갖고 있지 않다면 학회나 학술지에 업로드에 대한 허가를 받아야 한다. 국제학술지의 경우 S-SPACE에도 링크된 ‘SHERPA/RoMEO’라는 검색엔진을 통해 해당 학술지의 오픈 액세스 허용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작권 체계가 자리 잡지 않은 탓에 국내 상황은 복잡하다. 「국내 학술지 논문의 오픈 액세스와 아카이빙을 위한 저작권 귀속 연구」(2008)에서 홍재현 교수(중부대 문헌정보학과)는 906종의 국내 학술지 중 66.2%가 적절한 저작권 규정이 없고, 디지털 복제권과 전송권을 규정한 학술지는 14종뿐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저작권의 귀속 주체가 불분명한 상황에서는 오픈 액세스의 허용 주체를 규정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논문이 이미 영리업체의 온라인 DB에 등재된 경우 문제는 한층 더 복잡해진다. 유정훈 이사는 “국내 학술지는 저작권 규정이 애매하고, 많은 경우 저작권이 한시적으로 정해져 있어 오픈 액세스의 허용 주체가 누구인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저자는 저작권 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학회, 학술지, 온라인 DB 업체 모두에게 허가를 요청하는 상황이다.
교수들이 업로드해야 하는 DB가 이미 너무 많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현재 교수들은 연구비를 지원한 기금단체, 연구처를 포함해 논문을 5~6군데에 업로드해야 하는 상황이다. S-SPACE에 추가로 업로드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한때 도서관과 연구처가 DB를 연계해 운영하는 방안이 논의되기도 했다. 그러나 연구처의 DB인 교수연구업적관리시스템과 S-SPACE의 시스템이 서로 달라 기술적 문제와 저작권 문제로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진호 연구처장은 “두 시스템을 통합하는 데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저작권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논문에 대해서는 DB를 공유하는 방안을 도서관과 협의해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