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이 남긴 부채의식이
한국사회 민주화에 기여
현 정부의 반민주적 행태 속에
29주년 된 5·18 정신 되새겨야

이태 전 5・18민중항쟁 기념 제3회 청소년 백일장 심사를 하던 정희성 시인을 전율시킨 시 한 편이 있었다. 당시 경기여고 3학년이었던 정민경 양의 「그날」이라는 작품이다. 지난 이십 수 년 동안 광주를 노래한 상당한 시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이 시만큼 가슴을 서늘하게 한 시에 대한 기억이 내게는 없는 것 같다.

「그날」의 화자는 ‘그날’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중이었다.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 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거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의 주인은 ‘화려한 휴가’를 나온 진압군. 화자는 “참말 오줌 지릴 뻔”할 정도로 벌벌 떤다. 그때 총구가 묻는다. 무슨 관계냐? ‘어린놈’이 사촌 형님이라고 하자 ‘나’는 자기도 모르게 ‘아니오’라고 부인한다.

결국 ‘어린놈’은 총구에 끌려가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페달을 밟는다. 그러다가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 있데. 어린놈이…// 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보고야, 라디오도 안틀었시야. 근디 맨날 매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그날, 진압군을 피해 자신의 자전거에 올라탄 학생을 엉겁결에 모른다고 부인한 뒤 평생을 죄의식 속에서 살아온 작중 화자의 슬픈 고백을 다룬 시다. 정말 “오줌 지릴 뻔”할 정도로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이 시의 화자처럼, 1980년 광주항쟁 이후 죄의식을 지고 살아온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아직도 정신의 감옥에 갇혀 있고 어떤 이들은 마음의 병으로 이승을 떠났고 어떤 이들은 심신의 흉터를 만지며 여전히 살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런 여러 빛깔의 부채의식이 광주시민들의 항거를 폭동이 아닌 민주화운동으로 공인해 낸 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니오, 예수를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가 예수를 위해 목숨을 바쳤듯이 아니오, 부인해 살아남은 자의 부채의식이 한국사회 민주화의 상당 부분을 이룩했다.

그런데 광주 민주화운동 29주년이 되는 오늘 한국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반민주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 촛불 끄기와 용산 참사 뒤덮기는 그 유력한 상징이다. 촛불과 물대포, 망루와 헬리콥터의 대결은 마치 광주의 재현극 같았다. 29년 전 5월처럼 촛불은 잦아들었고 망루는 불탔다. 그 앞에서 진저리를 치는 사람,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자전거 뒤에 올라탄 양식(良識)은 총구에 끌려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다. 꺼지지 않는 촛불들, 독립을 지키려는 법관들의 목소리, 용산을 기억하는 연대의 움직임 속에 한 소녀 시인이 포착해낸 저 광주의 ‘어린 교복’이 ‘아른거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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