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8년 전 일이다. 언론은 서울이 물바다가 돼 63빌딩 허리까지 물이 차 오르는 가상 시나리오를 대서특필했다. 북한의 전략은 참 기괴한 것이었다. 그러나 올림픽을 안심하고 치러야 하지 않겠냐며 방호용 ‘평화의 댐’이 지닌 투자가치가 강조됐고 의구심은 사그러들었다. 초등학생마저 쌈짓돈 500원 동전과 함께 ‘신뢰’를 정권에 맡겼다. 하지만 국민의 성금으로 지은 ‘평화의 댐’이 방어해야 했을 ‘금강산 댐’의 수공(水功) 능력은 200억 톤이 아니라 9톤이라는 사실이 정권이 바뀌면서 드러났다. 희대의 사기극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대통령 직선제가 조심스레 수면위로 떠 오르고, 대학생을 중심으로 비판세력이 조직화되기 시작하던 정황을 근거로 5공화국의 의중을 넘겨짚을 수 있을 뿐이다. 정확한 의도는 여전히 ‘그것이 알고 싶다’로 남아있다.

 

기득권 정치세력은 위기돌파뿐 아니라 선거용으로도 수많은 미스터리를 양산했다. 87년 대선 김현희 미스터리, 92년 남조선노동당 사건, 96년 총선 북풍, 97년 대선 총풍 모두 의혹이 말끔히 씻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진실여부를 떠나 정치적 선전(宣傳)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안전한 정치적 선택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설득의 수사를 펼치기 위해 북한의 불순한 의도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확실한 근거도 없다. 더구나 불순한 의도는 비추어지지만 그 수위가 어떠한지 ‘막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면 슬그머니 잊혀지기도 수월하다. 

올 총선을 앞두고 야당세력은 다시 한번 ‘그것이 알고 싶다’를 상영 중이다. 야당의 탄핵논의는 처음에 흥미진작 용 예고편쯤으로 보였다.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총선여론 줄다리기를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선정적 선전쯤이 아닌가 싶었다. 막상 방영이 한창일 때도 여당의 탄핵안 가결장담도 대통령의 사과거부에 대한 맞불대응인줄 알았다. 미스터리 정치선전들이 북한과의 개전(開戰)으로 이어지는 법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야권연합은 정치적 수사의 기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작품의 클라이맥스를 시작점으로 되돌려놓고 말았다. 

야권의 대통령 탄핵은 크나큰 정치적 오판임에 분명하다. 판단력을 잃은 오기정치가 정치의 기본기를 망각하고 정략적 행동의 한계를 넘어섰으니 응당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탄핵은 야권이 기획하는 훨씬 더 큰 규모의 미스터리물의 맛보기 정도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랜드 플랜의 기획자들은 여당 당수의 눈빛을 응대하지 못했다. 국민의 마음이 돌아서도 ‘일시적 거품’정도로 치부할 도리밖에 없다. 

힘의 논리와 독선으로 휘청대는 ‘공영방송국 국회’의 수치스러운 미스테리물을 이제 시청자의 힘으로 종영시켜야 할 것이다. 500원 동전과 함께 맡겼던 우리의 신뢰, 이제 되돌려 받을 때 됐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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