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광 받는 테스트마켓 한국
신상품 테스팅 이어져
안전 검증 시험대상 안 되려면
자신의 권리 명확히 인식해야

나종연 교수
소비자아동학부

최근 한 다국적 제약회사가 한국법인에 대한 투자계획을 증가하겠다고 밝혔다는 기자회견 기사를 읽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한국만큼 새로운 제품에 열광하는 나라가 없기에 한국은 완벽한 테스트 마켓”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테스트 마켓(test market)은 신상품이 출시하기 이전에 실제 시장에서의 반응을 조사하기 위해 제품 수요, 판매 방법, 가격, 프로모션, 광고 등을 시험해 보는 소규모의 시장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 정보기술(IT) 업계, 화장품, 자동차, 식의약품, 유아용품 등 다양한 상품군에서 한국을 테스트 마켓으로 활용하는 다국적 또는 외국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마치 한국 시장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긍정적인 현상인 것처럼 언론에 묘사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과연 테스트 마켓으로 활용되는 것이 긍정적이기만 한 일일까? 테스트 마켓에 대한 기사를 접하면 항상 소비자학 저서의 고전 중 하나인 ‘100,000,000 Guinea Pigs’가 떠오른다. 1933년에 발간되어서 미국의 소비자운동이 활성화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이 책에서 저자들은 새로운 상품들이 어떠한 부작용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검증이 미비한 상태에서, 위험의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정보제공 없이 출시되고, 결국 소비자들은 신상품 테스팅(testing)을 위한 기니 피그가 되어버린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제품과 서비스가 점점 복잡해지고, 소비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위험의 종류도 다양해지는 현대사회에서 개선되기 보다는 심화되고 있다. 시장개방과 함께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부분은 사회마다 안전과 소비자보호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는 현실에서, 한 나라에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의 소비자가 기니 피그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월 영국의 마케팅 회사 Phorm사는 자사 홈페이지에 한국의 KT와 협력해서 한국 시장을 자신들의 새로운 타겟마케팅 기술의 테스트 마켓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우려되는 점은 이 기술이 소비자의 프라이버시와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미국이나 EU의 소비자단체에 의해 강하게 거부되고 있는 기술이고, 이에 따라 미국이나 EU 국가 등에서는 아직까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기술이라는 점이다. 한국소비자가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시험해보고, 이에 대한 효용을 광고하기 위한 대상으로 활용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신상품과 신기술에 대한 열린 태도와, 꼼꼼하게 상품을 평가하는 소비자로서의 자질이 한국을 이상적인 테스트 마켓으로 만들었고 한국에서의 성공은 다른 나라에서의 성공을 보증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면, 이제 한국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사용하는 상품과 서비스는 어떤 나라의 소비자들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평가를 듣고 싶다. 세계를 대표하는 소비자로서 한국 소비자는 자신의 권리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고, 이러한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것을 통해 자신은 물론 세계의 소비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한국의 소비자들이 똑똑해져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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