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헌
법학일반대학원 석사과정
서울대생은 뒤끝이 깔끔하지 못하다. 단 한번의 휴학도 없이 내리 5년 이상을 서울대에 ‘상주’하고 있는 필자의 판단이다. 새내기로서 학교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공부도 하고 연애도 하던 시절을 거쳐 한때는 ‘고시계’에 몸담은 고시생으로, 그리고 대학원생 신분으로 캠퍼스를 전전하는 지금까지 그와 같은 인상은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서울대생이라고 하면 ‘엄친딸’ 혹은 ‘엄친아’로 불리며 칭찬과 기대, 부러움 따위를 한 몸에 받아 왔을 터이지만 생활 속에서 타인을 인식하고 배려하는 데 있어서는 ‘낙제생’에 가깝다고 본다.

셔틀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하면 먼저 내리기 위해 좁은 복도에 촘촘히 서 있는 사람들 사이로 기어이 자신의 몸을 들이미는 학생들 때문에 하루는 짜증으로 시작된다. 예전에는 모든 셔틀버스에 큼직하게 붙어있던“서서 온 사람부터 차례로 내립시다.”라는 문구가 사라진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도서관에 있으면 고시생들이 수험서에 붙일 자료를 오리기 위해 나무로 된 책상을 칼로 긁어 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중앙도서관에서 칼집이 나지 않은 자리를 찾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면 꽤 많은 의자들이 서로 등을 맞대며 앞을 가로막는다. 학생들이 의자를 밀어 넣지 않고 자리를 뜬 탓이다. 화장실로 가려면 홍해를 가르는 심정으로 의자들을 하나씩 밀어 넣으면서 이동해야 한다.

학생식당에서 여럿이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가져간 의자는 제자리로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강의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곳곳에 널브러진 캔이나 플라스틱 용기들을 보면 여기가 멀티플렉스 영화관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왜 그럴까? 공부를 잘해서 오냐오냐 자랐기 때문일까? 집에서는 그것이 통할지 몰라도 학교에서는 자신의 뒤치다꺼리를 해줄 사람이 항시 대기하고 있지 않다. 자신의 수고를 덜기 위해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떠난다면 그 수고는 고스란히 다른 사람에게 전가된다.

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똑똑한 서울대생들이 모를 리 없는데 이러한 행태가 쉽게 시정되지 않는 것은, 딱히 뭐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없고 적당히 피해를 주는 것쯤은 괜찮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남을 배려하는 연습이 부족한 학생들이 저마다 공직에 나아가겠다고 고시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평소에는 자기밖에 모르다가 공직자가 되는 순간부터 ‘국민의 봉사자’로 변모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어느 나라나 그 나라를 이끌어 갈 리더를 배출하는 교육기관이 있기 마련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서울대가 그 역할을 담당해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차원의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국민을 배려하고 섬기는 리더의 부재라는 그 해결하지 못한 과제 속에서 허덕이게 될 것이다. 물론 서울대가 그러한 교육기관으로 계속 살아남는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부디 지난 몇 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글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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