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0호 5월 18일자 2면
“스누라이프 게시글 무단 기사화 만연” 기사를 읽고

세계 최대 검색 엔진인 ‘Google’의 최고 경영자 에릭 슈미트는 펜실베니아대 졸업식 축사에서 구세대와 신세대의 차이에 대해 “우리 세대는 일생 중 가장 당혹스러웠던 순간을 감추기 위해 애를 쓰지만 요즘 세대는 오히려 그 순간을 동영상으로 찍어 유투브에 올린다”고 말해 엄숙한 졸업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오늘날 인터넷 문화의 단면을 예리하게 지적한 그의 통찰처럼 열린 소통의 ‘광장’인 인터넷에는 오프라인에 존재했던 개인의 ‘밀실’은 모두 사라졌다. 인터넷에 개인을 위한 ‘밀실’은 없다. 오직 공유와 개방만이 존재할 뿐이다.

오프라인 ‘광장’의 복잡함을 견디지 못하고 인터넷이라는 ‘밀실’안으로 숨어들어간 개인은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단순한 일상을 남기지만 누군가는 그 글을 읽고 스티커를 붙여준다. 사진 게시판에 올린 나만의 여행 사진에는 누군가의 댓글이 달렸고 블로그에 적힌 맛집 기행은 스크랩의 흔적이 가득하다. ‘트랙백’이 걸려있다는 문구가 쓰여져 있기도 하고 나도 모르는 누군가가 쪽지를 보내기도 하고 혹은 클럽에 초대하기도 한다.

군중들의 시선을 피해 사적인 ‘밀실’을 찾아 인터넷으로 몸을 숨겼더니 더 넓은 ‘광장’의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비록 개인의 블로그나 소수의 구성원들만을 위한 커뮤니티가 형식적인 ‘밀실’의 굴레를 쓰고 있지만 실상은 ‘광장’과 다를 바가 없다. 오프라인의 ‘광장’을 피해 숨어들어온 온라인의 ‘밀실’. 온라인의 ‘밀실’이 다시 인터넷의 ‘광장’이 돼버리는 아이러니, 우리는 이러한 복잡다단함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깨보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둘만의 오붓한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우리들만의 소통을 위해 ‘스누라이프’와 같은 커뮤니티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밀실’인 척해도 인터넷 안에서 이뤄지는 일들은 결코 ‘밀실’의 속삭임이 될 수 없다. 우리 둘만 속삭였던 사랑의 흔적들은 포털 사진 게시판을 장식하고 있고 ‘스누라이프’에서 나누었던 우리들의 사적인 일상들은 어느 순간 신문에 기사화되기 때문이다. 역시 인터넷은 열린 ‘광장’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지금까지 수많은 광장을 경험했고 밀실을 알고 있었다. 본래 광장은 대화를 위한 장이었고, 밀실은 침묵을 위한 곳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앞에서 그런 원론적인 정의는 뒤섞이고 우리는 뒤섞인 자리에 멈춰 아파하게 된다. 그러나 아파하지 말자. 왜냐하면 ‘Explorer’를 클릭하는 순간 우리 모두는 ‘광장’에만 존재하는 개인이기 때문이다.


김가람
국어교육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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