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한ㆍ민당은 소위 ‘헌정 사상 초유의 대결단’을 내리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이번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며 ‘독재’를 꿈꾸던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다. 탄핵에 찬성한 한민당 의원들 중에는 고문기술자, 반민주인사, 뇌물수수자, 성폭행발언자에 선거법위반자까지 포함돼 있지만, 한민당 의원들에게 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닌 듯 하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 치하 40여 년간 ‘탄핵’의‘ 탄’자도 꺼내본 적 없는 국회의원들이 초유의 대결단을 내리게 된 것은 돈, 군화발, 특공대가 대통령 곁을 떠났기 때문일까. 집권여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독재’가 우려된다는 논리는 대체 어디서 배웠을까. 미국에서 배웠을까, 과거의 한국에서 배웠을까. 더구나 이들이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는 ‘국민의 뜻’도 이번에는 이들 곁을 떠난 듯한데 말이다. 각 언론기관에서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70%의 국민들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처럼 어이없는 ‘대통령 탄핵’보다 더 슬픈 현실은 현실 정치를 냉소하며 참여를 거부하는 ‘신선들’이다. 이번 사태를 대하는 분노, 황당함, 놀람의 반응 속에 냉소 역시 모습을 드러낸다. 이 냉소는 ‘투표’라는 최소한의 참여마저 거부하는 데서 극치를 이룬다. 우리나라 총선 투표율을 살펴보면 초대 총선에서 95.5%을 기록한 후 2000년 16대 57.2% 까지 꾸준히 추락했다.

‘투표’마저 거부하는 ‘신선들’ 중 현실정치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아나키스트는 얼마나 될까. 필자는 현실정치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정치가 더럽다’, ‘마음에 꼭 드는 후보가 없다’는 이유로 투표하지 않는 이들에게 ‘반찬이 맛없다고 굶어죽을 셈이냐’고 묻고 싶다. ‘귀찮아도 밥은 꼭 챙겨먹어라’는 고향집 어머님 말씀처럼, 귀찮아도 꼭 투표하자.

국회의석 270석 중 206석을 독점한 한민당은 이를 바탕으로 ‘대통령 탄핵’을 실현시켰다. 이들에게 76%의 의석을 몰아준 16대 총선은 겨우 절반 남짓한 ‘국민의 뜻’만을 반영했다. 나머지 절반은 ‘더러운 정치가 싫어서’ 투표하지 않았고, 오늘날 얼마나 깨끗한 정치판을 만들었나. 이번 사태의 책임을 모두 ‘신선들’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하지만, 책임을 전혀 지지 않는 것은 더욱 부당하다.

시야를 조금 좁혀 서울대를 보자. 지난해 실시된 47대 총학생회 선거는 연장투표 끝에 투표율 50% 미만으로 무산됐다. 이후 총학생회의 역할은 연석회의가 떠맡았으나, 4달이라는 짧은 활동기간과 총학선거 무산으로 인한 무기력증은 연석회의의 발목을 잡는다. ‘이젠 총학생회가 없어도 된다’, ‘집회없는 조용한 학교 좀 다녀보자’고 말하는 학생들은 매년 10%씩 등록금이 인상되면 5년 후 등록금은 얼마가 되는지 계산해 본적이 있을까. 대동제 없는 학교를 상상해 본적이 있을까. 지난 12일 타 대학 17개 총학생회가 국회 앞에 모여 탄핵 반대 시위를 하고 있을때, 연석회의는 회의실에서 머리를 맞대고 앉아 성명서 문구를 손보고 있었다. 개별적으로 시위에 참가했던 한 서울대 학생은 ‘다른 대학 총학생회는 다 보이는데 왜 서울대 총학생회는 보이질 않는지 의아했다’고 전한다.

참여하자. ‘귀찮아도 밥은 꼭 챙겨먹어라’는 고향집 어머님 말씀처럼, 귀찮아도 꼭 투표하자. 4월 15일 총선 때도 투표하고, 4월 7일 총학생회 선거에도 투표하자. 현실정치가 더럽다면 바꾸려고 노력하면 될 것 아닌가. 총학생회가 마음에 안든다면 바꾸려고 노력하면 될 것 아닌가. 바꾸는 것은 늘 젊은이들의 몫이었다.

단, 그대가 아나키스트라면 투표권을 반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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