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신성가족
김두식 지음┃창비┃
342쪽┃1만3천원
마르크스는 ‘비평가와 우매한 대중은 구별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온건 자유주의자인 바우어 형제 일파를 ‘신성가족’이라고 지칭했다. 신성가족은 자신을보통 사람들과 구별하고 자기 만족에 빠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한국 법조계의 현실과 닮아있다. 마침 신영철 대법관 파문과 검찰의 표적 수사 등으로 신성가족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에서 법조계 내, 외부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책이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 15일(금) 출간된 『불멸의 신성가족』은 한국 사법계의 문제점을 진단, 분석한다. 검사 출신 법학자인 저자는 이미 『헌법의 풍경』에서 대한민국 헌법과 시민의 권리 사이에서 생기는 괴리를 폭로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사례들은 의정부와 대전에서 법조비리 사건이 터지기 전의 일로 법조계의 변화가 반영되지 않았다. 저자는 이후 법조계의 모습을 살피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판, 검사, 변호사, 기자, 소송 경험자 등 23명의 법조계 내, 외부 사람들과의 심층면접을 통해 한국 사법계의 모습을 들여다 봤다.

소송 경험자들의 증언을 통해 본 법조계는 한 마디로 ‘말이 안 통하는 곳’이다. 노동운동가인 이해영씨(가명)는 비정규직 노조 탄압에 맞서는 중 접했던 검사의 태도에 대해 말한다. 검사의 태도는 “네 세계관과 내 세계관은 다르다”고 전제한 후 노동운동가의 얘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그를 “구속돼서 살 거 각오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단정하는 식이다. 사기를 당한 뒤 혼자서 소송을 준비했던 하경미씨(가명)의 증언에서도 사법계의 불친절함과 그들의 권위에 위축되는 일반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법원에 앉아서 결정을 기다릴 때는 어린아이가 엄마한테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판결을 내려주길 바라는 것처럼 있게” 되고 “가슴이 쿵쾅쿵쾅 거리면서 조마조마해야 한다”고 말한다.

법조계 내부에서 보는 그들 자신의 모습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한 바 있는 권용준씨(가명)는 전직 부장판사인 변호사가 판사실로 찾아와 ‘판사들과 식사나 하라’며 준 50만원을 받았던 상황에 대해 얘기한다. 그는 “돈을 거절했다가 평판이 오히려 나빠질 수 있는 법조계의 현실에서는 돈 잘 받는 원만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사법계 에서는 법관으로서의 양심보다 더 강력한 무엇인가가 작동함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한숨만 나오는 어두운 사법계의 모습을 고발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사법계의 불친절함과 의사소통의 단절은 적은 인원이 많은 사건을 맡는 것에서 기인한다고 보고, 판, 검사의 증원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또 시민들이 사법계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말고 직접 말을 붙여볼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신성가족의 권위가 여전히 드높은 상황에서 누가 그들에게 직접 말을 붙일 수 있을까. 저자의 표현대로 ‘억지 희망’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씁쓸히 자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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