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화 100주년, 만화비평의 현황


삽화 및 그래픽: 김지우 기자

사회와 역사에 대해 엄숙하게 고뇌하느라 웃지도 않았을 것 같은 문학평론가와 시인도 만화를 봤다. ‘지성인이라 일컬어지는 이들이 한낱 만화를 봤다니’라며 갸우뚱할 만하나 문학평론가 김현과 시인 오규원은 만화를 봤고, 읽었고, ‘비평’까지 했다.

프랑스의 영화평론가이자 만화평론가인 프랑시스 라카생은 만화를 ‘제9의 예술’이라고 칭했고, 아트 슈피겔만은 만화를 연극, 영화와 같은 선상에 놓고 예술성을 논하기도 했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만화의 예술적 가치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지만 아직 충분해 보이지는 않는다. 만화평론가 김상훈씨는 “서구권에서는 1960년대부터 만화를 예술 장르로 인식했지만 일본 등 아시아권에서는 예술로서의 만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만화 속에서 사회를 읽어내다=일본만화가 한국 만화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한국의 만화비평은 한국만화를 비평 대상으로 삼는다. 한국만화를 비평하는 것은 여타 비평과 마찬가지로 텍스트를 통해 그것이 속한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 독자 및 사회와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의 일환으로 만화평론가 손상익은 『한국만화통사』를 펴내 1900년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만화의 변화 양상과 그 속에 담긴 당대 사회의 모습을 기술했다. 또 일찍이 문학평론가 김현은 「우리 사회의 건강한 에로티시즘」에서 만화가 박수동의 「고인돌」에 담겨있는 노골적인 성적 표현에 대해 “남성 위주의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의미와 성의 해방에 대한 긍정적 의미가 나타나있다”고 평했다.

                                            

◇만화비평은 ‘장난’이 아니다=현재까지 연구된 바로는 1927년 발표된 권구현의 「신문삽화 만평」이 한국 최초의 만화비평이라고 일컬어진다. 이 만화비평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 당시 주요 신문에 연재되던 만화와 이 만화를 그린 작가들의 필체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후 1950년대에는 만화 「고바우」로 유명한 만화가 김성환이 한국 만화사를 집필하는 동시에 만화비평을 했다. 그러나 만화는 여전히 ‘비평의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 가벼운 장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기에 만화비평은 정식 비평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1970년대 이른바 ‘고급문화’인 문학을 하는 문학평론가 김현과 시인 오규원이 ‘대중문화’로 일컬어지는 만화를 비평한 ‘사건’은 만화를 둘러싼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킨 한 계기가 된다. 김현과 오규원은 만화를 단순한 오락물이 아닌 예술의 한 장르로 인식해 당대 사회에 ‘고급문화로서의 만화’에 대한 인식을 환기했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만화도 예술인가」에서 “만화 또한 문학 작품과 마찬가지의 구조를 가진 상징체계로서의 대상”임을 지적한다. 이에 따르면 만화도 예술이기에 평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글과 합쳐진 ‘그림’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기호론적인 의미도 지니는데, 이는 문학작품의 비유나 상징과 같은 역할을 한다.

                                           

◇본격적인 만화비평의 시작=1990년대 들어 만화비평은 대중화의 길로 들어선다. 만화비평의 양적, 질적 팽창과 더불어 만화비평 전문 집단의 등장은 이 시기의 특징적인 면모다. 1990년대에는 한국만화평론가협회와 한국만화학회가 결성됐고 만화를 주제로 평론, 역사, 문화, 산업 등을 다룬 20여 권의 책들이 연이어 출간됐다.

1993년 「스포츠서울」은 신춘문예 분야에 ‘만화평론’을 도입했다. 만화평론가 김성훈씨는  “이는 일종의 ‘사건’이라 할 만한데, 해당 장르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주요한 텍스트가 됐음을 인정해주는 암묵적 동의가 기저에 깔려있다”고 말했다. ‘만화평론’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들로는 현재 만화평론가로 활동 중인 손상익(1993), 박인하(1995), 박석환(1997)이 있다. 이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만화비평은 한때 ‘황금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2000년대 접어들어 게임과 영화 등 만화를 대신할 문화 콘텐츠가 증가하면서 만화 출판시장은 위축됐고 만화비평 또한 쇠퇴 일로를 걷게 됐다.

                                              

◇자신만의 색깔 지닌 이론 정립돼야=현재 만화비평은 인터넷 웹진인 「만화규장각」을 중심으로 그 명맥을 유지해가고 있다. 만화규장각은 부천만화정보센터의 만화데이터베이스 사업의 일환으로 만화평론가인 손상익, 박인하, 박석환이 참여했다. 만화규장각은 매달 칼럼과 비평을 실은 웹진을 발간한다. 그 외에는 개별 만화평론가들의 연구에 기대고 있는 실정이다. 손상익씨는 “만화비평은 만화작품의 공급이 원활히 이뤄져야 가능한데 현재 평론할 만한 만화가 확대 재생산되지 않는 형국”이라고 분석했다.

만화비평이론이 아직 본궤도에 오르지 못해 만화비평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만화평론가 김성훈씨는 “만화비평이론 및 만화비평만의 특성이 없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런 기반이 닦이고 나면 만화비평은 활성화되고 만화 산업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로 한국만화는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이를 기념하는 ‘한국만화 100주년기념 특별전’이 6월 2일부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시사, 순정, 대안, 웹 등 모든 만화 장르를 아우르지만 만화비평의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빈 공간은 2027년, 만화비평 100주년을 위해 일부러 비워놓은 공간은 아닐까. 만화비평이론이라는 정교한 프리즘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시간이 좀 더 필요해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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