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김지우 기자
지난해 7월 열린 세계철학대회에서 한국의 씨알사상이 철학자들의 깊은 관심을 받았다. 당시 씨알사상은 서양과 동양, 민주화운동 등이 뒤섞인 한국 고유의 독특함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사람이 우주와 역사와 신과 생명의 씨알’이라는 씨알사상은 ‘사람이 씨알이다’(『대학신문』 2008년 3월 31일자)에서 다룬 바 있다.


본격 연구되는 씨알

씨알사상은 세계철학대회 이후 더욱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지난 3월 재단법인 씨알은 씨알사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씨알학회를 창립했다. 씨알학회는 씨알을 사유한 한국 근현대 사상가를 발굴하고 그들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중국과 일본은 근현대 철학사가 정리돼 있지만 현재 한국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씨알학회장 이규성 교수(이화여대 철학과)는 “함석헌과 유영모의 씨알사상을 기본으로 무정부주의자였던 신채호, 대종교에서 활동한 나철, 정인보를 비롯해 백낙청까지 한국 근현대사에 발자취를 남긴 여러 학자들을 조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함석헌 사상을 집중 조명하는 학회도 조만간 만들어질 예정이다. 씨알사상만으로는 함석헌 사상 전체를 아우를 수 없기 때문이다. 함석헌학회(가칭)를 준비 중인 김영호 교수(인하대 철학과)는 “함석헌 사상을 철학, 정치학, 생태학, 신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별로 연구하고 그 현대적 의의를 찾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씨알사상 연구자들은 단순히 씨알사상을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최근 이기상 교수(한국외대 철학과)는 씨알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한알’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한’이라는 단어는 전체와 부분 그리고 관계 모두를 아우르고, ‘알’이라는 단어는 그물에 뚫려 있는 구멍인 그물코의 한 ‘부분’을 뜻하면서도 울타리의 ‘전체’를 의미한다. 즉 ‘한알’은 부분과 전체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마치 세포 낱낱이 하나의 개체로서 독립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몸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전체성을 띠는 것과 같다. 이기상 교수는 “부분만을 강조한 개인주의와 전체를 중요시한 마르크스주의를 넘어서는 철학적 대안을 독립성과 전체성을 아우르는 ‘한알’ 개념을 통해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씨알, 지평을 넓히다

한편 씨알사상은 학문적 연구와 더불어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제5기 씨알사상 강좌’가 씨알재단 주최로 4월 10일부터 6월 12일까지 매주 금요일 열리고 있다. 이 강좌에서 씨알사상연구소 박재순 소장은 ‘유영모의 시와 영성’을, 김경재 교수(한신대 철학과)는 ‘함석헌의 종교시와 씨알영성’을 강의한다. 매월 첫째주 일요일 열리는 씨알사상 월례강좌에는 일반인 70~80명 정도가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씨알사상은 해외로도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일본 근현대사상 권위자인 오가와 하우리사 교수(일본 도쿄대 철학과)는 최근 유영모의 씨알사상에 심취해 일본인을 대상으로 유영모의 사상에 대한 시민강좌를 열기로 했다. 또 씨알재단과 교토포럼은 ‘한일 철학 포럼’을 오는 7월 19일부터 23일까지 한국에서 개최해 한․일 양국 철학자들 간 씨알사상에 대한 지적 교류를 도모할 예정이다. 한편 유럽의 철학전문지인 「콩코르디아」에서도 한국 철학을 소개하면서 함석헌 사상을 비중 있게 다뤘다.

세계철학대회 이후 재 주목받고 있는 씨알사상은 꾸준히 진화 중이다. 현재 연구자들은 과거 사상가들의 씨알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도 그 속에서 현재적 의의를 발견해내고 있다. 대중에게로 세계로 다가가기에 더욱 의미깊은 씨알사상의 귀추가 더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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