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웅
사회학과·03

그랬다. 그 책을 펼쳤을 때, 노회찬과 권영길의 앞 페이지에는 박형준과 김성식(관악갑 국회의원)이 있었고, 임종인과 정태인의 옆 페이지에는 오세훈과 안병직이 있었다. 이인영과 임종석의 뒤 페이지에는 최홍재와 홍진표가 있었고, 노무현의 앞 뒤 페이지에는 김진홍과 서경석이 있었다. 그 책은 1997년 1월 「말」에서 1996년까지의 자료를 정리해 발간한 『진보인사 인명록』이었다.

그랬었다. 때는 바야흐로 1996년, 6학년이었던 한 소년이 운동회 가장행렬에서 ‘DJ DOC’의 ‘여름 이야기'에 맞춰 억지로 춤을 춰야만 했던 해였다. 진보를 위해 힘을 기울였고, 역사발전의 주춧돌 역할을 했던 '진보인사'들을 담은 책은 그 해 발간됐다. 어느덧 긴 시간이 지났고, 어색한 춤을 추던 소년은 대학생이 됐다. 그는 교지를 만들다 편집실 한 켠에서 먼지가 켜켜이 쌓인 『인명록』을 발견하게 됐고, 의외의 인물들이 수록된 데 의문을 가졌다. 다시 긴 시간이 지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에 그 소년은 다시 인명록을 펴게 됐다. 책은 한층 더 삭아 있었지만, 12년 전의 인명록이 주는 메시지는 조금 더 분명해졌다.

이 논문은 네트워크의 관점으로 12년간의 진보인사 연결망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추적했다. 조직군 생태학에서 아이디어를 빌리고 네트워크 이론의 중앙성 지표를 통해, 진보진영에서 보수진영으로 옮겨 간 이들의 변화를 설명했다. 본래는 학벌이나 지역주의와 같은 변수들도 고려 대상이었으나, 논문의 일관성을 위해 네트워크의 속성에 집중했다. 실은 자신이 아직도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고민스럽고 걱정된다. 많은 오류를 지닌 습작에 불과한 이 논문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신 심사위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또 네트워크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시고, 보잘 것 없는 학부생을 끝없이 독려해주신 현대사회학방법론의 장덕진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항상 좋은 역할 모델이 돼 주시는 사회발전연구소의 장경섭 소장님 외 여러 구성원 분들과, 주눅이 들어 있던 본인에게 마감 45분 전에 논문 제출을 종용해준 김란우 조교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돌이켜보니 유독 정치 변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에는 역사와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해주신 부모님의 영향이 컸으며, 대학생으로서의 나를 키운 건 팔할이 교지 구성원들과의 토론이었다. 이 분들과 내 삶을 공유하는 모든 이들 그리고 지적 자극의 원천인 박영주 양에게 새삼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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