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의 성급한 법인화 시도
시장주의적 대학개혁 꾀해
서울대 위상·역할 생각해서
법인화 문제 다시 논의해야

오명석 교수
인류학과
이번 학기 들어 서울대 법인화 추진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는 느낌이 든다. 지난 3월 법인화 방안 연구보고서 제출, 전교직원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실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공청회가 열렸다. 들리는 말로는 2학기에 국회에 법안 상정까지 계획한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는 여전히 왜 법인화를 하려는 것인지, 어떤 법인화를 하려는지 잘 모르겠다. 주위 교수들도 모르기는 마찬가지니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대학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엄청난 변화인데 이런 식으로 진행해도 되는가? 교수의 무관심이 문제인가, 본부의 홍보위주 접근과 서두름이 문제인가? 누구에게 더 책임이 있는지 따지기 전에 대학 구성원 사이에 진정한 대화와 소통의 결핍이 심각하다는 것은 인정했으면 한다.

왜 법인화를 하려는가? 법인화위원회의 입장은 단순명료하다.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해. 그 단순명료함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세계의 대학을 줄 세우는 기준은 무엇이고, 누가 그런 잣대를 들이대는가? 그 기준과 잣대가 무엇인지 우리 모두 대충은 짐작하고 있다. 우려하는 바는 서울대 발전의 작은 지표이자 수단에 불과한 그 기준이 목적 자체로 둔갑해 대학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상황이다. 세계 10위권 대학으로의 도약을 서울대 발전의 지상과제로 설정하는 태도에서 미래에 대한 비전과 상상력의 빈곤을 더 느낄 뿐이다. 그런 자세로는 세계 명문대로의 진입이란 요원한 일일 것이다.

좀 더 피부에 와 닿는 이유는 현재의 국립대체제로는 재정확충이 어려우니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법인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가 재정지원 확충 등 여러 방안이 함께 제시돼 있지만, 핵심은 대학의 수익사업에 대한 완전한 재량권을 확보하는 데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왜 굳이 법인화를 추진하겠는가?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바는 시장주의적 대학개혁의 방향이다. 대학이 시장과 담쌓고 상아탑 속에서 고고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현재 서울대의 실상도 이와는 거리가 멀다. 이미 시장이 연구와 교육 현장에 아주 깊이 들어와 있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시장 경쟁원리의 전면적 도입을 수반하려는 법인화 방안에 대해 반대한다. 교수 연봉제가 결국은 교수의 연구비 수주 실적과 연동되지 않을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어도 될까? 기초학문이 소위 잘나가는 학문이 벌어들인 수입의 떡고물에 의존하는 보호학문의 신세가 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는가? 시장으로부터의 초연함도 필요한 학문의 자존심은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가? 법인화 연구보고서는 걱정 하지 말라지만 상투적인 언설 속에서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의 대학체계 내에서 서울대는 국립대로서 지켜야 할 역할과 위상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 서울대 법인화는 단지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법인화 논의는 출발점에 겨우 들어섰다. 형식적인 학내 의견 수렴과정을 통해 단숨에 종착점에 도착하려는 과욕을 부리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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