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의 체험이 소설집 쓴 계기살아 있음이 죄업인 늑대의 욕망에서오늘날 자본과 인간의 욕망 읽어내

 

사진: 양희정 기자

도를 아십니까. ‘도인’과 마주치면 한 번쯤 들어봄 직한 말이다. 그런데 도인이 이렇게 얘기하는 경우는 어떨까. “저기요…. 아니, 웨어 알 유 프롬?” 이는 뼛속까지 한국인이지만 외모는 어딘지 혼혈인을 닮은 소설가가 겪은 실화다. 기구한 인생을 살았을 법한 이 사람 어떤 소설을 쓸지 궁금하다. 『대학신문』은 1994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고 지난 4월 30일 세 번째 소설집 『늑대』(창비)를 출간한 소설가 전성태씨를 만나보았다.

그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안산으로 내려갔다. “소설 재밌게 읽었나요?” 본격적으로 인터뷰하기 전 그가 먼저 질문을 던져 왔다. 그전에는 이 말 쉬이 얘기 못 했단다. “이번 소설집을 내면서 그나마 덜 부끄러웠어요. 첫 창작집은 정신없이 내지른듯 했고, 두 번째는 나 자신이 혼란스러워 그것마저 작품 속에 녹아났죠. 그러나 이번엔 다릅니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선명했고, 에피소드들도 생생하게 잡혔습니다”. 소설집 『늑대』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나오는 대목이다.

그동안 전성태씨가 출간한 소설집은 많지 않다. 등단 이후 15년 동안 소설집 3권만 낸 이 사람, 게으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 침착하고 내면의 고민이 많은 사람이었다. 깊은 내면의 우물을 가진 자는 그만큼 돌아오는 대답 소리도 늦다. 소설집 『늑대』는 작가가 몽골에서 겪은 내면 여행에 대한 대답이다. 이번 소설집에서 총 10편의 작품 가운데 6편(「목란식당」, 「늑대」, 「남방식물」, 「코리언 쏠저」, 「두번째 왈츠」, 「중국산 폭죽」)이 몽골을 무대로 하고 있다.

2005년 문화예술위원회의 연수프로그램으로 3개월 동안 몽골에 다녀온다는 것이 6개월 동안 머무르게 됐다. 그곳에서 그는 지구의 시간이 열리는 시원(始原)을 봤다고 한다. “몽골초원은 초원의 황량함과 융기한 심해의 느낌이 모두 살아 있는 곳입니다. 흔히 대지는 생명을 싹 틔우는 곳이라 여겨지지만 몽골초원은 생명에 혹독하죠. 오히려 초원 속 생명들은 생명의 끈을 붙잡기 위해 노력해야죠”.

“늑대는 초원에 차원 하나를 더하는 존재이죠. 저 탐욕에 무슨 인과(因果)가 있겠습니까. 욕망과 힘에 무슨 죄가 있습니까”(「늑대」).
전성태의 소설을 관통하는 화두는 ‘욕망’이다. 늑대의 욕망은 무한 증식한다.
“늑대는 어쩌면 악령이 숨을 불어넣어 태어난 짐승인지도 모릅니다. 다른 맹수들처럼 주린 배만 채우고 물러나면 족하나 늑대는 천성이 그러지를 못합니다. 하룻밤에도 수백 마리 양들의 숨통을 끊어놓습니다”(「늑대」 ).

소설가 전성태씨는 늑대의 욕망을 오늘날의 탐욕스런 자본주의에서도 발견한다.
“나는 간혹 언덕에 올라 초원을 가로지르는 아스팔트 포장길을 내려다봅니다. 그 검은 혓바닥이 자본의 그것처럼 여겨집니다”(「늑대」).
1993년 몽골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체제를 전환한다. 바둑판 같은 도로가 초원에 들어서고 금, 구리, 석탄 등을 석출하고자 해외 기업들이 앞다퉈 들어섰다. “울란바토르는 몽골의 서울 같은 곳입니다. 그런데 서울을 벗어나자마자 초원만 나온다고 생각해보세요. 마치 TV 채널을 확확 돌리는 느낌입니다”. 사회주의체제에서 자본주의체제로 넘어가는 그 시기의 과도기적 풍경 앞에서 그는 자본주의적 욕망의 탄생과 전염을 포착했다.

그렇다고 그가 모든 욕망을 거부해야 할 것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영화 「박쥐」에서 뱀파이어가 된 신부는 피를 먹지 않고 살 수 없고 「늑대」에서 사냥꾼은 늑대 사냥을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뱀파이어 신부가 된다면 어떻게 살지 묻는 질문에 “뱀파이어의 욕망에 충실해야죠. 마음껏 피 빨아먹을 겁니다(웃음)”라고 답하는 그다. 「늑대」에서 촌장의 딸인 치무게와 사냥꾼의 아내인 허와의 사랑을 그리는 것은 이 작가가 욕망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영혼은 명백한 범죄 앞에서보다 모호한 죄의식 속에서 제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지요”(「늑대」).
그 역시도 죄의식을 지닌 사람이었다. 소설가로서 마감에 쫓겨 아쉬운 원고를 내는 일. 그래서 간혹 소설 속에 자그마한 실수가 발견되기도 한다. 그가 털어놓은 실수는 이렇다. 「누구 내 구두 못 봤소?」에서 이미 구두를 벗은 인물이 한 번 더 구두를 벗는 장면이 묘사된 것이다.

등단 후 15년 동안 장편소설을 발표한 적이 없는 그는 최근 긴 호흡의 장편소설도 준비 중이다. 앞으로 그가 구상 중인 장편 3부작을 기대해도 될 성 싶다. 준비 기간만 10년이다. “대나무 숲이 울창한  전원 가든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굉장히 환상적인 문체로 글을 이어 나갈 것이라는 것만큼만 밝혀두죠”.

“몽골인에게 길을 가르쳐주지 말라는 말이 있으니 그에게 길을 가르쳐주면 그는 이후 영원히 그 길로만 간다는 것이다” (『늑대』 ‘작가의 말’에서).
그는 몽골의 대초원에서 인생의 갈림길을 보았다. 소설가 전성태씨는 이미 오래전에 누군가로부터 길안내를 받은 존재인듯 하다. 그는 아주 오래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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