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정책에
서울대도 친환경 캠퍼스로 동참
생태와 성장은 양립할 수 없어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발전해야

못내 불안했다. 멀쩡한 강을 파헤쳐 운하를 만들고야 말겠다던 그분이, 강부자 내각에 부동산의 꿈을 심어준 그분이, 뉴타운으로 대한민국 서민을 녹다운시킨 그분이,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새 비전을 내놔 한반도의 기적을 이루고 싶다고 했을 때 불안이 엄습했다. 매번 강도 높은 충격으로 자극의 역치를 높여주는 그분의 뜨악함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녹색’과 ‘성장’의 아름다운 선순환고리가 추구하는 바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면서도 경제 발전을 위해 개발을 지속하자는 것이다. 올해 초 녹색성장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지난 6일에는 녹색성장 국가전략을 발표했다. 환경을 고려하는 동시에 경제 침체를 극복하겠다는 녹색성장이란 꽤 괜찮은 기치에 서울대도 ‘지속가능한 친환경 서울대학교 추진을 위한 선언 행사’를 열어 재빠르게 동참했다. 현 정권은 4년간 50조원을 투자한다는 녹색뉴딜을 내세워 현 정권은 에너지 위기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공공사업을 통해 96만개의 녹색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녹색성장에서 화석에너지를 대체하는 것은 원자력발전이며 그 많은 녹색일자리는 사실상 건설 분야의 단순 노무직이다. 대규모 환경파괴가 핵심에 자리 잡아 묘한 폐해를 양산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최근 정부는 농지법, 산업 임지법 등에서 제한하는 녹색의 규제들을 대폭 축소하고 있으며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환경영향평가제마저 무력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가슴 벅찬 이름만 부르면서 그린벨트는 풀어헤치고 삽을 들어올렸다. 이건 신파다. 너무 사랑해서 이별을 고하는 구차한 신파다.

4대강 정비를 녹색으로 포장해 밀어붙이는 녹색성장의 본질은 성장이다. 적어도 ‘녹색’이란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막 자라나는 새싹 빛의 활기와 상쾌함이 가져다준 희망의 환영은 녹색성장의 허상을 콘크리트로 마감 처리했다. 적이 분명한 적일 때 그것은 차라리 위험한 일이 아니다. 적인지 동지인지 분간되지 않을 때, 트로이의 목마가 문을 두드릴 때 의도치 않게 도금된 가치의 전복이 이뤄진다. 약간의 설렘과 두려움은 때 늦은 후회와 개탄으로 남는다. 진정 무서운 것은 윤색과 신화와 호도다.

성장이란 지난한 과정이다. 한 사회가 삶의 질을 향상해 나가고 성숙한 문화를 일궈내는 것에 성장통은 불가피하다. 끊임없는 사회적 고민과 그 속에서 합의된 철학은 비등점에 도달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이를 무시하고 개발주의로 점철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은 조바심 많은 자의 성장병을 보여줄 뿐이다.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생태와 무한한 성장이 결코 양립할 수 없다. 그래서 녹색과 성장 간의 기묘한 결합이 이뤄낸 장밋빛 그린은 아무래도 꺼려진다.
  
인간이 저지르는 녹색의 작위를 아는지 모르는지 비 개인 관악의 녹음이 싱그럽다. 작위의 초록과 무작위의 초록, 초록은 동색이 아니다. 녹색의 망령은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빛깔을 퇴색시키고 있다. 계절과 빛에 따라 한 순간도 같은 색으로 멈춰 있지 않는 자연을 녹색이란 강박에 붙잡아 두려는 심사는 충분히 불필요한 인위고 악이다. 에코는 그린이 아니다. 생명과 사물의 이치, 그 결을 따라 억지로 자연의 순리를, 그 바탕을 거스르는 무리를 범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에코다.

김지혜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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