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를 상징하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양 손에 천칭과 칼을 들고 있다. 천칭은 공정한 판단을, 칼은 엄정한 집행을 상징한다. 힘 있는 자들에게는 정의의 여신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들은 정의를 무시하거나 수정하며 심지어 창조한다. 정의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하는 것이 곧 정의인 그 세계에서 천칭과 칼은 전리품에 가깝다. 정의의 여신을 간절히 원하는 이들은 힘없는 자들이다. 빼앗기고 짓밟혀도 싸울 힘이 없을 때 그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정의의 여신을 부른다. 정의는 늘 약자의 정의여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검찰에 대해서 정의의 여신 운운하는 것은 낯간지러운 일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검찰은 거의 이성을 잃은 모습이다. 아니, 이제야 가면을 홀가분하게 벗어던진 것인가.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정도(正道)를 벗어났다’는 표현조차 과분해 보인다. 그것은 저급한 언론플레이로 점철된 상징적 살인에 가까웠다. 공직자가 언론을 상대로 사상 유례가 없는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자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고뇌는 생략한 채 신속히 대응해 급기야 MBC ‘피디수첩’ 제작진의 사적인 이메일까지 뒤져 공개했으니 실로 안하무인이었다. 뿐인가. 불미스러운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족벌언론사 간부에게는 민망할 정도로 관대하였고, 벼랑 끝에 내몰려 죽어나간 철거민들에게는 한 없이 냉혹했다. 

사람을 살리는 칼을 활인검(活人劍)이라 하고 사람을 죽이는 칼을 살인검(殺人劍)이라 한다. 대한민국 검찰은 두 칼을 다 쓰되 엉뚱한 곳에 쓴다. 권세 있는 자들에게는 활인검을, 힘없는 이들에게는 살인검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상징하듯 일반 국민들에게 ‘사법 정의’는 애초부터 거의 환멸의 대상이었지만, 현 정권 출범 이후 그 환멸은 이제 분노가 된 것 같다. 상식을 배반하는 기괴한 논리로 힘없는 사람들에게 살인검을 휘두르는 검찰에게 급기야 국민들은 ‘견찰(犬察)’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단어는 그럴듯하지만 그저 ‘개자식’이라는 뜻이다. 먹이를 주는 주인에게 꼬리를 흔드는 개에게는 성찰과 고뇌가 없다. 정의의 여신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국민의 세금을 녹으로 받아먹는 공무원이지만 그들은 국민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이 갖고 있는 저 괴이한 특권 의식은 난감하다. 법전만을 이 잡듯이 외워 율사(律師)가 된 이들을 특별히 존경해야 할 이유가 있을 리 없다. 그들이 갖고 있는 특정한 전문지식은 소방관이 갖고 있는 소방 기술보다 애초부터 우월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은, 소방관처럼 한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되, 그 일을 ‘정의’라는 고차원적인 가치를 다루면서 하기 때문에 한층 더 삼엄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부담을 더 질 뿐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어울리는 것은 고뇌와 불면의 밤이다. 정의의 여신은 바로 그 시간에 태어날 것이다. 그 밤만이 우리의 희망이다.

신형철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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