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혁명기의 ‘테르미도르 반동’에 대해 알려거든 역사책을 보면 될 것이다. 그래도 그러한 일이 도대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 상상이 안되면 엊그제 백주대낮의 ‘3*12 반동’ 현장을 떠올리면 된다. 그렇다고 독선적 개혁과잉으로 하루만에 단두대에서 스러진 로베스피에르와 독선적 개혁결핍증으로 대통령 직무를 정지 당한 노무현을 동렬에 놓자는 것은 전혀 아니다.

우리는 그 동안 박정희 도당의 5ㆍ16 반란과 유신, 전두환 일당의 12ㆍ12 군란과 5ㆍ17 반란, 1990년의 ‘3당 야합’ 등 수구반동들에게 거의 10년 주기로 당해왔는데도 아직도 너무나 순진하다. 설마 탄핵안 발의를 하랴, ‘명예로운 은퇴’를 꿈꾼다는 국회의장이라는 자가 차마 경호권 발동의 무리수를 두겠는가, 쿠데타와 내란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일반 ‘백성’들만이 아니라 많은 ‘정치통’들이 가졌던 생각이다. 이제는 순박한 꿈에서 깨어나자. 쿠데타 현장에서 킬킬대는 유신의 딸과 “16대 국회 만세”를 외쳐대는 차떼기들의 모습을 보고서도 그들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수구반동들은 권력과 기득권 앞에서 못할 짓이 없다. 식칼 테러 따위는 약과이고 반민특위를 해산하고 수백만의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던 그들이다. 그 범죄집단의 정통 후예인 3ㆍ12 반역범들은 이미 친일행위진상규명법을 누더기로 만들고 민간인학살규명법을 날려버림으로써 또 한번 자신들의 정체를 만천하에 과시했다. 이들 수구부패도당의 목표는 국민들에게서 주권을 찬탈하고 역사를 되돌리는 것이다. 그들이 4ㆍ15 총선을 무산시키고 내각제 개헌을 시도하리라는 전망도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노무현 일병구하기’가 아니라 국민 주권 수호가 문제

3ㆍ12 반동의 피해자는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 아니라 우리 국민이요 민중이다. ‘승부사’ 노무현은 국민주권을 볼모로 이러한 상황을 연출했거나, 적어도 고대했다고 보아야 한다. 현 국면의 핵심은 ‘노무현 일병 구하기’가 아니라 국민주권의 수호와 신장이다. 보수세력 내의 수구분파와 개혁(?)분파 사이의 이전투구를 민중의 정치적 진출의 계기로 전환시켜야만 할 때이다.

각별한 투쟁이 없는 한 반동적 분위기는 점차 확산될 것이다. 쿠데타의 배후조정자이면서 진두지휘자인 조중동은 말할 것도 없고 하루가 다르게 표변하는 이른바 ‘중립지’의 논조는 그 점을 잘 보여준다.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을 흡혈귀에서 황제폐하로 고쳐 부르던 작태가 21세기 한국에서 재현되고 있다.

내란은 초기에 진압해야 한다. 수구보수들의 궤변은 논리로, 폭력은 정의의 힘으로 제압해야 한다. 그들만의 판인 ‘탄핵정국’을 평상적인 ‘총선국면’으로 하루 빨리 전환시켜야 한다. 해방 직후 민족진영 대 친일반역도당의 투쟁이 찬탁과 반탁 사이의 대결로 치환된 잘못된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광화문에서, 서면에서, 금남로에서, 그리고 헌법재판소 앞에서 수구냉전도당과 기회주의자들을 압도하는 국민의 힘, 민중의 힘을 보여야 한다. 4월 혁명과 6월 항쟁을 잇는 이번 투쟁에서 혁명과 항쟁의 성과를 기회주의 하이에나들에게 빼앗긴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눈망울 맑은 우리 어린이들의 미래를 빼앗길 수는 없다.

황상익 의대교수ㆍ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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