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국 지위에 오른 한국
독자적인 발전모델 만들 때
국가, 기업, NGOs 동반으로
자유와 연대의 공동체 일궈야

임현진 교수
사회학과
세계체제 안에서 한국의 위상은 중견국(Middle-range power)이다. 하드파워나 소프트파워 면에서 개도국의 범주는 넘어서 있지만, 이른바 G7이라 할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 뒤처져 있다.

과연 한국은 이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얼마전 한국을 방문한 미국 예일대의 폴 케네디 교수는 한국이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을 경제적으로 추격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그들만한 정치적, 문화적 위세를 누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매우 흥미로운 전망을 했다. 세계 23개국에 번역된 『강대국의 흥망』의 저자답게 국력(國力)과 달리 국격(國格)은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깊은 뜻을 지닌다.

이미 오래전 선진국들이 자동차, 선박, 비행기 등을 제조했을 때 한국은 자전거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했던 나라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은 선박, 자동차, 철강, 반도체, 가전 등을 잘 만들어 세계시장에 내다 파는 위치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한국의 갈 길은 멀고 험하다. 비록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일궈냈다는 찬사를 받고 있지만, 경제발전은 성장과 복지 사이의 균형을 맞춰야 하고 민주주의도 절차와 실질 사이의 간격을 메워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은 현실적으로 일본식 발전경험을 뒤따르면서 이상적으로 스웨덴식 발전경험에 적지 않는 관심을 두어 왔다. 그러나 일본식 정부주도 모델은 노동배제적인 성격으로 인한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스웨덴식 노사합의 모델은 인구가 많은 우리나라에 적용이 쉽지 않다. 이제 우리 안팎의 여건에 적합한 발전모델을 찾아야 할 시점에 있다. 우리의 독자적인 '한국 발전모델'을 만들어 내야 할 처지다.

한국의 바람직한 미래발전을 위해서 강중국(强中國), 강소국(强小國), 소강국(小康國) 모델을 참고할 수 있다. 첫 번째, 강중국 발전전략은 독일, 프랑스 등의 발전경험에 기반을 두는 것으로서 IT, BT, NT, GT와 같은 첨단산업뿐만 아니라 철강, 자동차, 선박, 섬유와 같은 전통산업까지도 집중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육성하는 전략이다. 두 번째, 강소국 발전전략은 유럽의 네덜란드, 덴마크, 벨기에, 스위스 등의 발전경험에 바탕을 둔 것으로 수출주도의 상품개발을 통해 세계경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선택과 집중에 의해 특정 농업과 산업 부문을 특화하는 전략이다. 세 번째, 소강국 발전전략은 하나의 이념형(Ideal-type)으로 물질적으로 잘 사는 것 이상으로 ‘여유 있고 반듯한 사회’를 위한 환경-인성 친화적 발전을 강조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발전전략의 현실적합성은 여러 가지 국내외적 요인과 결부해 판단할 문제다. 그럼에도 강중국, 강소국, 소강국 발전전략의 공통점은 시장의 자율을 중시하되 그것을 적절히 규제하는 정부가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물론 자본과 노동을 포함하는 모든 이해관계자 사이의 동반관계를 통해 자유와 연대의 공동체를 지향한다. 21세기 한국의 발전모델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기업과 NGOs 사이의 동반관계가 필요하다. 시민사회와 시장 사이의 조정자로서의 국가, 비판적 협조자로서의 NGOs, 그리고 국부의 창출자로서 기업들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통해 시민참여에 의한 민주적인 거버넌스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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