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은 1945년 창당한 이래 지금까지 64년간 장기집권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은 ‘일당독재(?)’도 있다. 일본 자민당은 54년간 정권을 유지하며 야당이 집권을 꿈도 꾸지 못할 아성으로 군림해왔다. 그런 일본에서 야당 민주당이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그리고 이변의 한가운데에는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가 있었다.

하토야마가 이끄는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내건 기치는 ‘정권교대(政權交代)’. 우리 정치사에서도 익숙한 구호지만 그 내용과 신선함은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하토야마 집안은 ‘일본의 케네디가’라고 불릴 정도로 정치명문가다. 그의 조부 이치로는 자민당 창당주역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자민당은 할아버지가 꿈꾸던 당이 아니다. 냉전 종식과 함께 자민당의 역사적 역할은 끝났으며 이제는 새로운 세력이 요구된다”며 자민당을 탈당하고 민주당을 창당해 스스로 야당의 가시밭길을 택했다.

정치명문가의 ‘도련님’으로만 인식되던 그의 선택에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지만 그는 묵묵히 야당의 길을 걸었다. 자유당과 합당 이후 그는 이인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오자와 이치로 전 대표의 예기치 않은 퇴진이 아니었다면 하토야마는 이처럼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토야마는 절대로 정권을 놓칠 것 같지 않던 자민당에 안주하는 편한 길을 마다하고 새로운 미래를 찾아 나섰고, 그 결과 50여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이처럼 ‘희망없는 희망’을 현실화시킨 그의 행보가 새삼 신선한 것은 최근 우리 정치권의 모습과 대조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3일(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국무총리 내정을 골자로 하는 개각을 단행했다. 이를 두고 박근혜 견제와 민주당 김 빼기, 진보이미지 확보 등 ‘1타3피’ 효과라는 지적도 있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발표 이후 보여준 정 내정자의 태도변화다. 그는 개각발표 직후 “이명박 대통령과 나의 경제철학에 차이가 없다”고 밝힌 데 이어 다음날에도 “서민에 대한 배려가 우리 두 사람의 콤비만큼 잘 되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대운하, 4대강 살리기, 부자 감세 등 현 정부의 주요 정책에 쓴소리를 마다치않던 강직한 학자의 모습을 봐 왔던 국민에게는 낯선 풍경이었다.

그러나 이를 단순한‘야합’이라고 평하는 것은 섣부를 수 있다. 그는 “현 상황이 책상머리에서 고뇌를 거듭하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며 국무총리로서 사회통합에 이바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어쩌면 그는 ‘희망없는 희망’을 찾아 나선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때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꼽히던 그가 반대당의 국무총리로 나섰다. 그의 선택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는 앞으로 행할 그의 행보가 설명해 줄 것이다. 그도 하토야마처럼 ‘희망없는 희망’을 찾아 나선 것인지 혹은 현실정치의 유혹과 야합한 것인지.


김병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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