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동 올림픽」의 리얼리즘과 「브이 포 벤데타」의 SF적 상상력
인권과 진실 지키기 위한 정부와의 투쟁

그래픽: 유다예 기자 dada@snu.kr

지난해 국방부가 ‘불온서적 23종’을 발표했다. 사람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에 경악했다. 지정된 도서들은 ‘불온도서가 아닌 추천도서’라는 평을 듣고 매출이 평소보다 3~4배 늘기도 했다. 『대학신문』은 21세기 자유 민주국가에서 모호한 기준으로 ‘불온’의 딱지를 붙이며 국민들을 통제하려 드는 현 정권의 발상에 착안해 ‘불온한 영화’를 선정해보았다. 연재는 국방부가 불온서적 선정 기준으로 내세운 ‘반정부’, ‘반자본주의’, ‘반미’, ‘북한 우호적’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총 4주간 진행될 예정이며 이동진, 유지나, 김영진, 강진모 영화평론가의 자문을 받아 영화를 선정했다.

1. 아직 끝나지 않은 올림픽
「상계동 올림픽」 (감독: 김동원,1991)

집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된 하루를 보낸 지친 몸이 돌아가 쉬는 곳이며 공간을 공유하는 이들이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감싸주는 안온한 공간이다. 그 공간이 비록 좀 초라할지언정 집은 분명 저마다의 꿈을 키워나가는 작은 우주다.

김동원 감독의 「상계동 올림픽」은 정부의 일방적인 철거민 정책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고된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동시에 우리나라에서 사회문제를 가감 없이 담아낸 진보적 독립영화의 시초로 손꼽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준비로 온 나라가 들떴을 때 서울 상계동 달동네 주민들은 집을 빼앗겼다. 정부가 외국 손님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진행한 도시정비사업의 결과로 상계동 사람들이 잃은 것은 비단 집만은 아니었다. 철거깡패와 포크레인으로부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박탈당했고 거리로 내몰린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버림받았고 모든 것을 빼앗겼다.

1987년, 계고장도 없이 집을 부수는 현장을   찍어 증거자료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상계동을 찾은 김동원 감독은 그곳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철거반을 만났다. 닭장차로 실려 가는 철거민들을 정신없이 찍었다는 김 감독은 그날 이후부터 1990년 1월까지 2년6개월 동안 상계동 철거민들과 살며 그들과 함께 했다고 한다. 집터 허무는 소리, 상계동 주민들의 울음소리, 폭력이 가해지는 소리 등 모든 현장음이 실제 그대로다. 고급 카메라도 현대 영화 미학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뤄진 촬영이지만 27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 「상계동 올림픽」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20년 전 우리의 현실을 전한다.

모든 것을 잃은 철거민들의 현실은 상상을 초월한다. 부천시로 옮겨간 후 아이들의 돼지저금통을 털고 70세 부부의 결혼반지를 판 돈으로 판잣집을 짓지만 그마저도 부천시의 횡포로 다 부숴진다. 하는 수 없이 사람들은 땅굴을 파서 겨울을 난다. 대한민국 철거민들의 인권은 없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출간된 지 30년, 「상계동 올림픽」이 발표된 지 20년이 지났다. 30년 전에는 추락했고 20년 전에는 땅 밑으로 숨어야 했던 철거민들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지난 용산참사는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다.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려다 희생된 철거민 다섯 명의 목숨도 목숨이지만, 그 후 200일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는 지난한 싸움을 보며 정부의 권위주의적 대응에 긴 한숨을 토하지 않은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디자인 서울’ 이면의 어느 지하에서 또 다른 사회적 약자들이 오늘도 신음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처럼 「상계동 올림픽」은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사회 음지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을 모른 체 하는  정부와 공권력은 결코 인정될 수 없다는 것까지도 보여준다.

2. 두려움을 벗고 거리로 나선 사람들
「브이 포 벤데타」 (감독: 제임스 멕테이그, 2006)

제3차 세계대전 이후 전체주의 국가로 변신한 2040년 영국. 거사는 이미 시작됐다. 1605년 국회의사당을 폭파하려 했던 한 남자 가이 포크스의 신념을 기억하는 단 한 사람 V에 의해서.

「브이 포 벤데타」는 1980년대 영국 마가릿 대처 정부의 극우 보수주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한 앨랜 무어의 원작 만화를 각색한 영화다. 영화 속 정부는 ‘공포’를 무기 삼아 독재를 일삼는다. 경찰과 군대를 앞세워 인종, 성적 취향, 종교가 다른 사람들을 ‘정신캠프’에 가두고 거리 곳곳에는 CCTV를 설치해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다. 영화는 숨 막히는 사회에서 비밀리에 자행된 국가 생체 실험의 피해자이자 돌연변이인 V가 억압의 고리를 해체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V는 말한다. 예술가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거짓으로 감싸지만, 정치가는 진실을 감싸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이는 이 영화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역사 속에 망각된 인물 가이 포크스를 되살린 까닭은 전체주의 사회에서 과연 진실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다.

V는 방송국을 점령해 독재정권을 전복시킬 혁명의 날인 11월 5일의 궐기를 기약하고, 왜곡된 언론보도와 정권의 부당함을 목도하는 군중들을 변화시킨다. 그들을 바꾸는 것은 용기다.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이고 자신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각성이다. 약속의 날 11월 5일이 다가오고 V의 가면을 쓴 무수한 군중들이 거리로 나온다. 그의 신념을 기억하는 이들이, 수많은 V가 화면을 가득 메우는 순간, 혁명의 메시아는 우리 모두가 된다.

12시가 되면 울리는 통금 사이렌, 괴벨스가 주장했던 것처럼 정부의 ‘피아노’가 돼 국민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는 언론, 24시간 감청을 통해 실시되는 여론 동향 파악까지… 영화 속 독재가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다. 1960년대 이래의 군사 독재에서부터 삼청교육대 그리고 광주 민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에게 무차별로 가해지는 폭력과 억압의 사슬은 오늘날에도 끊어지지 않았다. 현 정부의 언론장악 움직임이 한층 노골화되고 인터넷 회선을 통째로 감청하는 패킷 감청 논란이 제기되는 가운데, 진실을 고발할 언론도 자신의 생각을 자유로이 표현할 인터넷도 국가 권력에 예속돼가는 두려운 시대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지난 2008년 복면시위금지법에 대항해 이뤄진 촛불 문화제에서 「브이 포 벤데타」를 패러디한 이색적인 퍼포먼스의 행렬이 이어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V가 쓴 가면과 복장을 한 수십명의 사람들이 모여 ‘모든 인간은 체제 순응성에 저항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V의 신념을 떠올렸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여중생의 사인 규명을 촉구하는 집회에서 시작된 촛불 문화제는 어느덧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평화시위로 자리 잡았다. 국민들은 부당한 권력을 방조하지 않는다. 인간의 위엄과 자유를 찾는 작지만 위대한 힘은 세상을 조금씩 밝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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