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속의 사진을 쳐다본다. 백발의 머리지만 소년의 맑은 눈을 가진 사람이 나를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나는 반가워서 소리치고 싶다. 아, 선생님! 그러나 나는 곧 사진 옆의 기사를 읽는다. ‘김영정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이 28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54세.’ 나는 혼자서 중얼거린다. 그래, 선생님께서는 돌아가셨지.

사람은 사라져도 기억은 남는다. 나는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선생님은 학자로서, 교육자로서, 그리고 생애 마지막 3년간은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으로서 늘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선생님은 놀라운 호기심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공부하시는 분이었다. 특히 선생님은 철학과 개별 학문들간의 소통, 그리고 철학과 현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여러 학문들이 공동으로 마음의 본성을 밝히고자 하는 인지과학, 그리고 응용논리학과 비판적 사고 연구에 집중하셨고 커다란 업적을 남기셨다.

선생님은 깐깐하시면서도 정이 많으신 분이었다. 학문적 토론을 할 때는 가차 없으셨지만 그 밖의 자리에서는 소탈하고 따뜻하셨다. 학생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함께 고민하셨다. 특히 선생님은 합리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합리적 견해라고 판단하시면 비록 상대방과 의견이 달라도 기꺼이 수용하셨다.    

선생님은 서울대 입학 관리 업무에 대한 사명감과 보람을 갖고 계셨고 업무를 훌륭하게 수행해 내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공부와 교육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을 늘 안타깝게 생각하셨다. 돌아가시기 전 1년간, 선생님은 입학 관리 업무로 바쁘신 와중에서도 공부에 대한 믿을 수 없는 열정을 보이셨고 이 기간 동안 모두 여섯 편의 논문을 완성하셨다. 선생님은 이 논문들을 통해 형식논리학과 응용논리학 간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이른바 '선제논리' 체계를 발전시키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계셨다. 내게 선제논리의 아이디어를 설명하시면서 눈을 반짝반짝 빛내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공부와 교육, 그리고 업무에 대한 지나친 헌신이 선생님의 심장을 갉아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지 못했다.

다시 선생님의 사진을 쳐다본다. 사진 속에서 미소짓고 있는, 백발의 머리지만 소년의 맑은 눈을 가진 사람은 지금 당장이라도 내게 말을 건낼 것만 같다. 나는 생각한다. 혹시 나는 나쁜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현실 세계에서 선생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지 않을까.  이렇게 홀연히 떠나시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 일일까.
그러나 나는 다시 혼자서 중얼거린다.

그래, 선생님께서는 돌아가셨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강진호 교수
철학과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