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크지 『담론과 성찰』 창간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
현재를 조명하면서도
통시적 의미까지 다룬다

수년째 온·오프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에는 실용서 및 읽기에 부담없는 소설이 주를 이뤘다. 각종 사회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인문사회과학서적이 여전히 냉대받는 가운데, 지난달 15일 창간된 『담론과 성찰』은 잡지의 ‘읽는 재미’와 단행본의 깊이 있는 담론이 결합된 인문사회과학 무크지로서 눈길을 끈다.

편집주간을 맡은 김민웅 교수(성공회대 NGO대학원)는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는데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진지하게 성찰하는 분위기는 미약하다”고 현 세태를 꼬집으며 “개인의 생각하는 힘을 길러 비판과 성찰이 활발한 사회, 나아가 진보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이 책의 거시적인 창간 의도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창간의 직접적, 현실적 계기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등을 꼽으며 현 정부 체제에서 두드러지는 민주주의, 경제, 인권, 남북관계 등의 사회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이 책이 무크지로서 가지는 강점은 크게 두 측면에 있다. 우선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좀처럼 조화되기 어려운 ‘깊이 있는 내용’과 ‘부담 없는 형식’의 결합이다. 여러 형식을 아우를 수 있는 잡지의 장점을 활용해 지식인들의 담론을 담아냈다. 때문에 『담론과 성찰』은 논문 외에도 대중에게 친근한 대담, 좌담, 에세이, 소설 등의 다양한 형식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에 대해 박희진 편집부장은 “요즘 독자들은 가벼운 소설에만 심취하고 진지한 것을 기피하는 성향이 있다”며 “무크지는 단행본의 깊이와 대중적인 형식이 공생할 수 있는 그릇”이라 밝혔다.

『담론과 성찰』의 또 다른 강점은 시사에 비중을 두면서도 여타 인문사회과학 정기간행물보다 긴 수명이 담보된다는 것이다. 무크지는 사회의 주요 담론이 형성될 때마다 출판 시점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발간되는 부정기간행물이다. 김민웅 교수는 “월간지, 계간지 등은 발 빠르게 시사를 진단하는 데 주력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낡은 책’일 수밖에 없다”며 무크지의 강점이 “현재에 집중 조명되면서도 통시적으로 의미 있는 주제를 매 호 엄선해 최대한 근본적, 심층적으로 다루는 것”에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무크지는 시사지의 성격을 가지면서도 과거-현재-미래를 아우르는 깊이가 있어 언제든 다시 들춰 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담론과 성찰』 1호를 관통하는 주제는 ‘바보의 용기와 눈물의 힘’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더욱 뚜렷이 조성된 사회 각성의 분위기를 반영했다. 욕망을 따르지 않은 가치의 선택, 이른바 ‘바보 같은 선택’의 의미를 성찰하는 작업을 필두로 ‘시대를 제대로 살아나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일관되게 성찰한다. 기획좌담에서는 도정일 교수, 도종환 시인, 한정숙 교수, 김민웅 교수가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의미와 추모열기에 담긴 사회적 의미를 진단했다. 홍원표 교수의 「권력과 폭력」은 20세기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사상적 관점에서 우리 민주주의의 실태를 조망한다. 전반부의 다섯 편이 이들처럼 직접적인 사회문화 관련 담론이라면 후반부의 네 편은 최영준 교수의 「홍천강변에서 20년」처럼 인문학적 색채가 강한 글들이다. 이외에도 이태호 화백의 목탄화 「억새」, 분단의 현실을 보여주는 황헌만 사진작가의 「임진강」 화보도 담겨 있다.

건전한 비판 여론을 선도한다는 출판계의 사명은 독자들의 일시적 취향과 ‘편안한 내용’만을 좇아서는 달성하기 어렵다. 대신 ‘편안한 옷’을 책에 입히는 것은 인문사회과학 서적이 대중의 관심 밖에 있는 현 상황에서 의미 있는 노력이다. 형식의 대중성과 내용의 깊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담론과 성찰』이 이제 막 첫걸음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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