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과 인사동 부근을 지나갈 때면 그곳의 작업장에서 일하는 공예가를 보며 ‘열정이 대단하다’, ‘자기 일에 열중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등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빈번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저런 일을 하며 과연 밥이나 챙겨 먹을 수 있을까’라는 씁쓸한 말이다. 우리 사회에 순수한 예술로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릴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있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이 기사가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는 예술영화 전용관 문제를 보면, 예술영화에도 자본의 개념을 적용시켜 이익이 나지 않으면 전용관에 대한 지원이 끊기고 전용관 유지가 힘든 상황이 나타난다.

이는 예술영화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에서는 선뜻 예술에 대해 경제적인 지원을 하려는 개인은커녕 기업조차 찾기 어렵다. 정부 역시 예술에 대한 지원에는 인색한 편이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 예술의 어려운 현실을 기사를 읽으며 재인식하게 됐다.

「워낭소리」, 「똥파리」와 같은 예술 영화의 흥행이 일시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점이다. 예술 영화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대중들이 알았다기보다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시작된 입소문으로 흥행을 일으켰다는 일각의 시선을 확인시켜 주는 듯한 감상이 들기 때문이다. 예술영화만의 매력이 아니라 그저 여러 영화 중 하나의 매력에 많은 사람이 환호하고 나니 그것이 예술영화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워낭소리」, 「똥파리」가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예술영화의 미래가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한 번 접하기 시작한 예술영화는 어느 정도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에 대한 대중의 의식을 깨울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교육이나 캠페인을 통해 서서히 대중들의 의식을 바꿔 가는 노력이 진행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너무 급하게 순수 예술의 홀로서기를 바라기보다는 먼저 자본의 힘을 빌리더라도 예술에 대한 친숙함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기사에서 부정적으로 바라본 멀티플렉스 내에서의 예술영화 전용관 운영을 통해 대중이 예술영화에 대해 친숙해지게 하고, 나아가 차차 예술영화 전용관 수를 늘리는 방법도 가능할 것 같다.

또 예술영화 자체뿐만 아니라 예술영화 전용관에 대한 인식도 키워야 한다. 미술관, 문화센터 등에 대한 인식은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예술영화 전용관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포스터나 TV 광고를 통한 홍보가 힘들다면 인터넷에서의 홍보로부터 시작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영화와 예술영화 전용관에 대한 관심 환기로 우리나라 예술영화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상영될 수 있길 기원한다.

 예승진
 소비자아동학부·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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