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문학동네
320쪽 / 1만원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소통’이 화두다. 정치권에서 이야기하는 소통과 우리네 삶에서 아픔을 나누며 견디는 힘을 주는 소통은 다른 듯하다. 지난 8일(화) 출간된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서로 오해하기 쉬운 인간 사이에서 진정한 ‘소통’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고정팬 수만명을 거느려온 소설가 김연수의 열 번째 신작인 이 책에는 2007년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달로 간 코미디언」을 비롯해 총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소통이 서툰 사람들이 상실의 아픔을 각자의 고립된 기억 속에 묻기만 할 때 김연수는 소통의 가능성을 열며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등장인물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이번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삶에서의 상실과 그 상실의 고통을 치유하는 소통이다. 김연수는 각자 이질적인 세계 속에서 상실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서로의 벽을 허물며 소통하는 과정을 조심스럽게 그려낸다. 「모두에게 복된 새해-레이먼드 카버에게」에서 남편은 한국말이 서툰 인도인과 영어를 잘 못하는 아내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라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아내와 제대로 된 소통을 해오지 못한 남편은 그 인도인을 통해 아내의 외로움을 알게 되고, 오랫동안 연주되지 않은 피아노가 조율되듯 아내와의 소통 의지를 되살린다.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에서 미국 소설가인 ‘나’는 한국인 연인 케이케이를 잃은 상실감에 그의 고향인 ‘밤메’를 찾아 한국에 온다. 통역사 해피(혜미)는 그녀가 ‘밤뫼’를 ‘밤메’로 잘못 알아들은 것으로 생각해 ‘밤뫼’로 안내한다. ‘나’가 그곳에서 맞이하게 된 풍경은 황폐한 산업단지다. ‘나’는 언어적 장벽 때문에 엉뚱한 곳으로 가고, 또 혜미를 해피로 부르는 등 처음엔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이후 그들은 각각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아픔을 연결고리로 삼아 마음의 ‘벽’을 서서히 허물게 된다.

김연수식 소통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전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는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을 오해한다”며 “단 하나의 ‘이야기’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이해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가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에서 “인생이란 단 한 번 씌여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매 순간 고쳐지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렇듯 삶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고쳐지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끊임없이 소통의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소통은 소설 쓰기를 대하는 김연수의 심경변화와도 관련 있다. 그는 이야기의 부재때문에 소설 쓰기의 두려움을 느꼈다고 고백하며 한때 소설로 의미를 주고받는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다 그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힘을 얻게 됐다는 독자들과 만나며 다시금 소설의 ‘소통’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설에서 촛불시위와 용산참사를 묘사하는 등 사회에 대한 관심과 문제의식이 한층 넓어졌다. 그의 소설에서 “쉽게 절망하지 않고 고통을 견뎌내는 힘”을 얻는 독자들이 늘어 갈 가능성은 무궁무진해 보인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