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사 서적 듣기]

문헌 자료가 밝힐 수 없는, 역사의 공백을 채우는 구술사적 접근의 성과물은 일반 서적을 통해서도 접할 수 있다. 구술 자료를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 인용한 구술사 관련 서적을 읽고 있으면 마치 말하는 이가 옆에 앉아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만추, 이만희

우리 영화를 위한 대화
모임 지음
커뮤니케이션스북스
214쪽 / 2만1천원
『만추, 이만희』는 1960년대 영화감독 이만희에 대한 문헌 기록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가족, 동료 등 주변 인물의 증언을 통해 그의 삶을 기록했다. 한국연극영화예술상에서 감독상을 받은 「만추」는 한국영화의 예술성을 한층 높인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한국영화를 연구하는 ‘우리 영화를 위한 대화 모임’은 필름도 남아 있지 않은 영화 「만추」를 복원하기 위해 신문기사, 포스터, 스틸사진 등 문헌자료를 조사하고 관계자를 인터뷰해 책으로 펴냈다. 제작자 호현찬, 촬영감독 서정민, 주연배우 신성일, 문정숙 그리고 감독의 딸인 이혜영씨까지 이만희 감독을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의 인터뷰 녹취 내용이 책에 그대로 실려 있다.

이만희를 아는 이들은 그를 진정한 작가정신을 가진 감독으로 기억한다. 그는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국보급 도자기를 소품으로 쓰고, 모형이 아닌 실제 비행기에 폭격을 감행하기도 한다. 당시 제작자였던 호현찬씨는 이만희 감독의 천재적 연출력을 잘 엿볼 수 있는 일화로 촬영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유리창에 구멍을 내 균열이 생기는 장면을 찍었던 일을 회상한다. 이를 통해 연인이 이별하는 장면의 쓸쓸함과 절망의 깊이를 효과적으로 연출할 수 있었다. 그의 딸이자 영화배우인 이혜영씨는 항상 작업탓에 가족들에겐 빈자리가 더욱 컸던 인간 이만희의 모습을 담담하게 얘기하기도 한다.

전쟁과 기억

김경학 외 지음
한울
306쪽 / 2만2천원
『전쟁과 기억』에서는 한국전쟁의 거대담론에 묻혀 있던 개인, 마을 등 작은 세계가 겪은 전쟁경험과 기억 등 고통받은 민초들의 삶과 애환을 재조명했다. 문화인류학, 역사학, 사회학, 민속학 등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지닌 저자들은 비슷한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초점을 조금씩 달리하며 구술사적 접근을 한다. 마을 사람들이 집단학살과 폭력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기록하는 동시에 그들이 전장의 공간에서 반란군과 진압군 모두로부터 ‘타자’인 주변인으로서 인식한 전쟁에 대한 기억을 분석하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의 관계 재정립을 통한 전쟁의 기억을 분석하기도 한다.

당시 희생자의 가족, 살아남은 자들은 이데올로기, 이념에 의한 국가적 사실로서의 역사가 아닌 그들의 일상에 갑자기 들이닥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다. 전쟁이라는 비일상적 상황에서 폭력과 학살을 경험했던 한 마을주민은 이렇게 회고한다. “사람들이 왜 많이 죽었느냐 하면 인민군들이 들어와 가지고 왔다 후퇴할 때,…숙청이라 해가지고 그때 당시 사감으로, 감정으로, 그때는 무법천지제.…맘에 안 들면 때려죽여 버리고.” 이렇듯 전쟁 중 집단 학살과 폭력의 배경에는 사적 감정과 원한이 쌓여 비극으로 번진 경우가 많다. 역사를 기록할 때 단순히 이념적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집안 간 경쟁, 인심 상실 여부, 지역권력 속에서의 위치 등 다양한 차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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