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위기의 한 대안인 지식 코뮌
온라인까지 뻗어나가 지평을 넓히다

삽화: 김지우 기자 nabarium@snu.kr

독재정권 시절. 청년들은 소위 말하는 ‘불온서적’을 들고 자발적으로 한데 모여들었다. 제도권 밖 인문학 단체의 시작이었다. 지식에 대한 사회적 규제가 완화된 지금, 이들 단체는 더욱 성장하고 있다. 제도권 인문학이 문학·사학·철학 등 인문학과의 위상이 축소되고 인문학 교육이 감소하는 등의 문제점을 드러내자 제도권 밖 인문학이 ‘인문학 위기 담론’의 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제도권 인문학의 위기에는 신자유주의적 기조가 큰 영향을 미쳤다. 백종현 교수(철학과)는 저서 『한국 인문학 진흥의 길』을 통해 “우후죽순으로 대학이 생겨났고 인문학 전공자들이 대량으로 양산됐다”며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져 인문학의 위기가 시작됐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제도권 인문학이 소수 학자끼리만 소통되는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창작과 비평』의 전 주간 최원식 교수(인하대 한국어문학과)는 “대학의 폐쇄성이 인문학 위기 형성에 일조했다”며 “제도권 밖의 인문학 단체들이 인문학 대중화의 토양을 마련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문학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가치가 대중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 허브로 성장한 ‘인디 인문학’들의 향연

제도권 밖 인문학 단체들은 꾸준히 성장해 지식 허브의 한 축으로 기능 하고 있다. 분과 학문에 갇히지 않는다는 강점으로 각종 학문을 망라하며 연구하는 이들은 그 성과를 단행본으로 내놓기도 한다. 제도권 밖 인문학 단체의 대표격인 ‘연구 공간 수유+너머’(수유+너머)는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한국사회』,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 등의 저서를 발간했다. ‘수유+너머’는 공부와 생활을 함께 하는 단체의 성격을 특별히 ‘지식 코뮌’으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자체적 실험결과를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호모 쿵푸스』 등의 단행본으로 내기도 했다.

제도권 밖 인문학 단체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수유+너머’를 비롯해 일반인 대상의 강연 ‘콜로키움’과 재소자 대상의 강연 ‘찾아가는 인문학 강좌’를 주최하는 ‘지행네트워크’, 인문학 연구 공동체 ‘다중네트워크 센터’, 문학과 미디어아트를 접목한 대안 문화공간인 ‘문지문화원 사이’를 주목해볼 만하다. 1980년대 ‘불온서적의 성지’에서 세미나와 토론회를 유치하며 학술문화공간으로 변신한 전남대 앞 서점 ‘청년 글방’과 ‘좋은 책방’ 그리고 서울대 근처 녹두거리의 ‘그날이 오면’ 또한 제도권 밖 인문학 단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생과 일반인의 자발적 참여로 유지되는 이들 단체는 올가을에도 풍성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자본주의와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픈 독자는 ‘수유+너머’에서 오는 18일(금)부터 매주 금요일 개최하는 ‘대학생 케포이필리아’를 통해 마르크스와 루쉰의 삶을 배울 수 있다. ‘문지문화원 사이’는 황지우 시인이 21일부터 시민들의 문학적 감수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시학과 비극의 향연’을 주제로 아이스퀼로스와 소포클레스 등의 명작읽기 강의를 진행한다. 

◇‘성역’ 없는 온라인 인문학 공동체

언론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오프라인 단체들보다는 인지도가 약하지만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단체들 또한 인문학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한다. 이들은 단순히 오프라인 단체들이 활동 영역을 인터넷상으로 옮긴 것과는 다르다. 대표적 단체로는 올해 창립 10년을 맞은 인터넷 비평카페 ‘비평고원’이 있다.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의 역자 조영일 문학평론가가 카페장으로 활동하는 이 단체는 이미 인문학도라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대중적 단체로 성장했다.

‘비평고원’에는 성역이 없다. 철학·문학·영화 등 이들이 비평하지 않는 성역은 없으며 체면과 나이로 보호막을 갖던 선배들이 ‘기 센’ 후배들의 혹독한 비평을 피할 수 있는 성역은 더욱 없다. 온라인 커뮤니티가 오프라인 지식 코뮌과 비교해 갖는 강점이다. 조영일씨는 “비평고원의 모토는 자유로운 비평뿐”이라며 “오프라인 인문한 단체들은 상주 회원끼리의 유대로 신입 회원들이 배제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그는 “비평고원은 그러한 점을 고려해 오프라인에서의 모임을 지양한다”고 밝혔다. 또 ‘비평고원’은 참여자들이 자주 바뀌어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에서 일반인과의 소통이 용이하다. 실제 ‘비평고원’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회원의 절반 이상이 직장인, 자영업자, 주부 등 인문학 비전공자다. ‘비평고원’은 올가을 그간의 성과를 집대성한 동인지 『비평고원 프로젝트』를 발간할 계획이다. 이 동인지는 ‘가라타니 고진’과 ‘근대 문학의 종언’을 주제로 무크지 형식으로 출간된다 하니 이를 통해 제도권 밖 온라인 인문학의 수준을 느껴봄도 좋을 듯하다.

◇인터넷 공간은 학술활동의 변방이 아니다…중요한 것은 ‘의지’

온라인 인문학 단체는 피상적이고 부정확한 지식공동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또 지식 담론을 형성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 서평꾼 ‘로쟈’로 알려진 이현우씨는 『창작과 비평』에 기고한 글을 통해 ‘비평고원’을 비롯한 온라인 인문학 단체의 가능성을 인정한 바 있다. 인터넷 공간의 인문학 단체는 개방성과 공유성, 현장성과 순발력을 통해 기존의 학술단체들이 창출하지 못했던 ‘중간지대적 담론’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중화를 넘어선 새로운 학술담론의 창출에도 긍정적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의지’다. 인터넷 공간의 활용과 지식의 공유는 사용자의 의지에 달렸다.

“인문학의 위기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대중들의 인문학 수요는 높아지는 실정”이라는 ‘수유+너머’의 대표격인 최진호씨의 말처럼 제도권 밖 인문학은 이미 새로운 지식 원천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이들 단체는 해외에도 알려졌다. 최원식 교수는 “제도권 밖 인문학 단체들은 대중적인 인문학 가치 함양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며 “대중과의 친화력에 덧붙여 제도권 인문학과도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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