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치료 회생 여부로 결정돼
뇌사 외엔 회생 가능성 있어
모든 생명의 의미 존중돼야
존엄사에 대한 국민합의 필요

박재형 교수
영상의학과
최근 말기환자의 존엄사 혹은 무의미한 연명치료중단에 대한 찬반양론이 무성하다. 세브란스 병원 측은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지난 6월 23일 김모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 임종이 임박한, 소생가능성 없는 환자의 경우 단순히 생명 연장만을 위한 치료는 과잉이며 환자가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는 변호인 측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논란에서 ‘존엄사’라는 표현은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를 말하는지 확실치 않고 안락사를 미화하는 말로 오용될 소지가 있다. 최근에는 보다 객관적인 표현으로 ‘연명치료중단’이 사용되고 있다.

대법원은 판결에서 연명치료장치 제거의 세 가지 전제를 제시했다. 첫째 의식 회복 가능성이 없을 경우, 둘째 주요 장기의 회복이 불가능할 경우, 셋째 단기간에 사망하게 되는 경우. 그러나 김 할머니의 경우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후에도 안정된 상태에서 2개월 이상 생존하고 있다. 대법원이 의학적 자문을 얻어 무의미한 연명임을 확인하고 치료를 중단했음에도 환자는 임종하지 않고 스스로 연명함으로써 이러한 전제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다.

연명(延命)이라 함은 생명을 겨우 이어가는 것이다. 전통적인 개념에서 의사는 환자의 질병을 치료할 뿐 아니라 완치할 수 없는 경우 증세만을 치료하는 완화의료 혹은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를 한다. 연명치료가 무의미하다는 것은 생명의 연명이 아무 의미가 없음을 말한다. 치료가 무의미하다고 할 시점은 모든 가능성이 없어진 경우다. 뇌사는 대뇌뿐 아니라 전뇌의 불가역적 손상으로 인해 의식이 없고 스스로 호흡할 수 없으며 단기간에 심장사에 이르게 되는 경우라는 구체적인 의학적 기준이 마련돼 있다. 연명치료중단을 위해서는 뇌사상태가 아니면서 회생의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 대한 또 다른 기준이 필요한데 뇌사가 아닌 상태라면 어떤 경우든 적으나마 회생의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할 것이다. 

의학은 인간이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공헌을 했다. 그러나 의학이 발달하며 나타난 생명을 무한 연장하려는 생각과 생명을 인위적으로 판단하려는 인간의 욕심은 둘 다 문제다. 이제는 겸손히 의술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에 자리를 내 주는 게 연명치료 중단의 본래 의도다. 그러나 치료중단을 위해 뇌사 외의 또 다른 인위적 기준을 마련하면 이는 결국  점차 대상범위를 확대해 적극적 안락사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따라서 회생불가능성에 대한 예측과 언제 연명치료를 중단할 것인지의 판단엔 인간생명의 존엄성과 가치관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연명치료중단은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해야 하며 사전의료지시서를 만들어 환자 자신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임종이 임박하지 않은 지속적 식물상태환자를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무리다. 어떠한 생명이 의미 없다고 누가 판단할 것인가. 우리는 특정 상태의 인간생명이 무의미함을 단정한 후 저지른 뼈아픈 역사적 스캔들을 기억한다. 의식 혹은 기능의 회복 불가능 여부와 관계없이 가장 작고 약한 생명도 존중돼야 한다. 생명의 고통을 이해하고 생명의 가능성을 열어주며 무의미한 생명도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사회복지적 배려가 선행되는 것이 바른 사회의 갈 길이다.

최근 의료계와 법조계가 자리를 함께 해 품위있는 죽음의 의미를 규정하고 구체적 대안을 모색하기로 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러한 각계 전문가 집단의 대화가 더 폭넓게 진행돼야 하며 단순한 여론조사를 넘어 심도있는 토의와 국민적 합의를 통해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을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 제시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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