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유다예 기자 dada@snu.kr
지난 9일(수)부터 6일간 인사동에서는 ‘제22회 인사동 전통문화축제’가 열렸다. 고미술전과 공예문화교류전 등 전통미술품전시를 포함해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 이번 축제에서는 서예가 조병수 선생의 서예퍼포먼스, 달구지에 막걸리를 싣고 돌아다니는 황소 등 진풍경이 펼쳐져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축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인사동은 전통이 숨 쉬는 거리다. 서울시가 지정한 문화 거리이자 우리나라 제일의 전통 거리인 인사동을 방문하는 이들은 기왓장 색깔의 벽돌바닥, 곳곳에 자리한 고서점 등을 통해 전통과 마주한다. 그래서 인사동에 자리 잡은 가게들은 더욱더 ‘인사동스럽기’ 위해 애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글간판을 걸어 놓은 외국계 커피전문점 ‘스타벅스’가 대표적이다. ‘STARBUCKS COFFEE’가 아닌 ‘스타벅스 커피’라 쓰인 간판은 물론 전통기와와 한옥 문창살로 디자인한 외벽 등 인사동의 특색을 반영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눈에 띈다. 하지만 디자인을 예스럽게 했다고 ‘전통’이라 부를 수 있을까. 겉모양은 고풍스럽지만 그 안에서 파는 것은 서양차인 커피일 뿐. ‘진정한 전통’에 대한 논의 없이 유동인구가 많은 인사동의 이점만을 노린 상업시설들을 보니 문득 이런 의문이 스친다. 인사동에 전통은 있는가?


예술가와 서화의 거리 인사동

과거 육조거리와 육의전이 자리했던 종로 일대는 예로부터 상업과 행정의 중심지였다. 그중에서도 인사동에는 김홍도, 장승업, 신윤복 등의 화원을 양성한 도화원이 있었고 풍류를 즐기는 예술가들이 모여 살면서 서화의 거리로 불리게 됐다.

인사동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세기 말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다. 몰락한 양반들이 생계수단으로 집에 있는 고미술품을 외국손님들에게 파는 좌판이 열렸고 이것이 점차 전문화 돼 고서점과 골동품점, 화랑 등이 입점한 것이다. 이후 필방, 표구상 등 관련업종이 뒤따라 자리 잡았고 전통찻집과 한정식집 등 전통문화 관련시설도 들어왔다.

현재 인사동에는 화랑들과 필방, 화랑, 표구점 등 미술 관련업소가 200여개 있고 민속공예, 골동품집, 전통찻집 그리고 한정식집과 전통주점 등 전통문화 관련업소가 인사동 거리의 88%를 차지한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고서점인 ‘통문관’과 90년 전통을 자랑하는 ‘구하산방’을 비롯해 서울 시내 골동품점의 41.5%, 화랑의 38.8%, 필방의 91.8%가 밀집돼 있다. 현재 서울시는 한국방문의 해인 2010년을 맞아 ‘글로벌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인사동은 ‘문화교류 존’으로 지정돼 외국인 투자와 유치, 경제 활성화의 중심축으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위기의 인사동

하지만 우리나라 제일의 전통거리란 이름은 날이 갈수록 무색해지는 실정이다. 인사동의 전통을 잇는 고서점, 골동품점, 화랑, 필방, 표구점 등의 고유 업종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시정개발연구원이 2001년 발표한 ‘인사동 지구단위계획(안) 주민설명회 자료’에 따르면 전통문화업종은 1998년 조사 당시 인사동에 있는 전체업종 중 78%를 차지했으나 3년 후에는 42.6%로 감소했다. 고미술점(-49.4%), 화랑(-13.0%), 표구점(-34.5%), 필방(-51.8%) 등이 484개소에서 361개소로 무려 123개소가 줄어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고유업종이 나간 자리를 차지한 새로운 업종이다. 인사동전통보존위원회 서명중 문화기획팀장은 “증가한 업종들은 전통과는 이질적인 카페나 주점, 식당이 대다수”라며 “인사동의 특색이 옅어졌다”고 우려했다. 1998년을 기준으로 음식점과 카페는 22%에서 57.4%로 대폭 증가했다.

인사동 고유문화업종이라 할 만한 것들이 점차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메워가는 것은 국적불명의 공예품들이다. 인사동 거리에서 국적불명의 액세서리나 전통과는 거리가 먼 공예품 등을 접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골동품점 ‘시간여행’ 주인 김영준씨는 “티베트나 인도, 네팔 등 동남아국가의 공예품이나 값싼 중국산 제품을 우리나라 공예품과 섞어 판매하는 노점상이 많아졌다”며 “어디까지 전통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심지어 원산지 표기조차 안 하는 일도 있어 전통에 대해 그릇된 인상을 남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늘어나는 노점상 때문에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기존에 자리했던 전통문화업소다. 가령 3~5천원에 거래되는 중국산 부채 때문에 3~5만원하는 전주합죽선 부채는 손님이 쉽게 찾지 않는다. 인사동 일대의 노점상 규제법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봉책일 뿐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 많은 물품의 원산지표시를 일일이 점검하기란 불가능할뿐더러 노점상 역시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므로 큰 마찰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사동 위기 원인, 지나친 관심?

전문가들은 이같은 위기의 원인을 유동인구의 증가에서 찾는다. 배웅규 교수(중앙대 도시공학과)는 “도심재개발사업 시행, 지하철 안국역 개통, 인사동을 홍보하고자 한 각종 정부정책이 지역 접근성을 크게 증가시켰다”며 “증가한 유동인구가 지가와 임대료 상승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1997년부터 주말마다 시행된 ‘차 없는 거리’는 많은 사람이 방문하게 되는 계기가 됐지만 동시에 인사동을 ‘비싼 동네’로 만들었다. 1996년에서 1999년 사이 인사동지역의 지가가 9.1% 상승한 것에 비해 같은 종로구 소속인 예지동의 지가는 2.1% 하락했다. 이러한 지가상승은 인사동에 소재한 상인 중 87%에 달하는 영세 임대상인들에게 직격탄이 됐다. 배 교수는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공예품점과 달리 경쟁력 약한 고서점, 고화랑 등의 전통문화업종은 자연스럽게 퇴출당한다”고 지적했다.

유동인구는 급증했지만 방문자들의 문화수준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가장 급증한 방문자 연령대는 10~20대다. 이재익 교수(서경대 비주얼콘텐츠디자인학과)는 “우리 옛 문화를 알고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잊지 않는다. 이 교수는 “전통을 체험하겠다는 진지한 태도로 인사동을 찾기보다 장신구나 저가의 공예품을 보고 길가의 카페, 노점상을 즐겨 찾는 정도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세태는 노점상의 양적 증가만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존 정책은 어디에

현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제대로’된 지원정책이다. 도로정비, 야외무대 설치, 공중화장실 대폭 확장, 매주 문화행사 주최 등의 사업이 이미 진행 중이지만 정책 대부분이 인사동 홍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이를 보존하기 위한 정책은 미미한 상황이다. ‘공명당’ 주인 공병규씨는 “구청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예술제나 외국인을 위한 안내소 등을 운영하고 전통행사를 개최하고 있지만 정작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행정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며 “광주시에 소재한 북구문화거리처럼 시·군 차원에서 임대료나 세제를 고정하는 방법 등을 사용해 전통문화업종을 유지시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재자로서 정부가 나서 노점상과 전통문화업종 종사자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것도 시급하다. 현재 인사동 상점들은 노점상에게 손님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물건을 상점 밖에 진열하거나 너나 할 것 없이 본래 업종과는 상관없는 전통공예품을 내놓고 있어 거리에 혼란을 빚고 있다. 이에 대해 인사동전통보전위원회 손병철 부회장은 “한 골목길을 외래품목 거리로 만들어 구획을 나눠 운영하는 것도 갈등을 줄이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인사동 거리를 향유하는 사람들 차원에서 의식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개진되고 있다. ‘걷고싶은도시만들기’ 김은희 사무국장은 “문화거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에 대한 이해”라며 “인사동의 전통에 대한 시민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시연대에서 주최하고 인사동 탐방과 인사동 사람들과 가게를 경험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인사동학교’가 그 실천의 좋은 예다.

뚜렷한 보존 정책이 없는 가운데 인사동은 계속해서 변해가고 있다. 고(故) 천상병 시인의 아내이자 인사동에서 찻집 ‘귀천’을 운영하는 목순옥 여사의 말을 위로 삼아 안쓰러운 마음을 달래본다. “사람마다 인사동이 변했다고 말을 많이 합니다. 전통은 없고 음식점만 많다고. 그런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인사동을 끝까지 지키려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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