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거리 르포]

“이 일을 한 지 50년이 넘었습니다. 인사동은 고향이나 다름없지요”

삽화: 유다예 기자 dada@snu.kr

지금의 인사동에는 ‘전통의 거리’라는 이름이 어색해 보인다. 시장바닥을 연상케하듯 넘쳐나는 사람들과 상인들. 그리고 전통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어버리는 건축물과 외래 공예품들은 인사동을 ‘짝퉁 전통의 거리’로 만드는 데 한몫을 했다. 하지만 다행이도 인사동의 한켠에선 아직 ‘전통’의 의미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인사동의 터줏대감인 그들 자체로도 인사동 역사의 무게가 느껴진다.

인사동 거리를 쭉 가다 보면 중앙통로에서 양쪽으로 갈라지는 골목길이 나온다. 그곳에서 좌회전해 다시 20m쯤 가다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필방 ‘구하산방’이 있다. 들어서니 맨 먼저 정갈하게 정리된 붓들이 보이고, 중앙탁자엔 벼루들과 진한 색채가루들이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다. 문득 구하산방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궁금해진다. 이에 홍수희 사장은 “석양에 노을이 붉게 질 때 안개가 자욱이 낀 정자에서 아홉 명의 신선들이 모여 있다는 뜻이에요. 옛날엔 붓 잡는 선비들이 주로 왔는데 그들을 지칭해서 스님들이 지어주신 거죠”라고 설명한다.

한국 최초 필방의 사장답게 홍수희 씨의 붓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은 남다르다. 이곳이 다른 필방보다 훨씬 값이 비싼 것 아니냐는 물음에 홍수희 사장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떡인다. “에이, 우리 붓이 좋으니 당연히 가격도 비쌀 수밖에 없지. 지금은 붓이 공장에서 만들어지니깐 붓 털에 대해 전문적으로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우리는 만드는 붓마다 하나하나 대단히 공을 들이고 있어요. 붓의 용도에 따라 동물의 부위를 달리하고 있고 심지어 계절마다 달라지는 털의 힘까지 고려해서 만들고 있죠”라고 당당히 말하는 그의 태도에선 그의 필방 제품에 대한 자부감이 엿보인다.

얘기를 나누는 중간중간 손님들이 들어온다. 손님은 이러저러한 그림을 그릴 건데 어떤 붓이 좋겠냐고 물어본다. 그러자 사장은 수만 가지 종류의 붓 더미 속에서 안성맞춤인 붓 두세 개를 내놓는다. 대학교수라는 손님은 수업 때 학생들이 쓸 붓을 엄선하려고 왔단다. “제가 동양화를 시작했을 때부터 언제나 구하산방을 찾습니다. 아무래도 붓에 대한 노하우가 다른 곳보다 더 전문적이라는 믿음이 있거든요”라며 흔쾌히 말한다.

골목에서 다시 나와 상점들이 죽 늘어선 중앙통로를 지나다 보면 있는 듯 없는 듯 그냥 지나치게 되는 곳이 있다. 문은 꼭 닫혀 있고 실내 형광등은 희미해 장사를 안 하는 상점처럼 보인다. 여기가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문서 서점 ‘통문관’이다.

열린 건지 닫힌 건지 밖에서는 좀처럼 판단이 안 돼 문 앞에서 한참 서성이다 들어가니 오래된 책내음이 난다. 고려시대부터 구한말까지를 아우르는 고서들이 천장을 다 덮을 정도로 쌓여 있어 좁은 공간임에도 복잡한 책 무더기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릴 것만 같다. 통문관 주인 이종운씨는 “통문관이 들어오기 쉬운 분위기는 아니죠. 사실 사람들이 여기를 들락날락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그저 구경거리로 와서 책을 이리저리 뒤져보다가 책이 손상될 수 있으니까요. 여기는 물건을 거래한다는 것보다 보관한다는 의미가 더 크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는 일요일에는 아예 쉬어요.” 그의 이런 솔직한 대답은 그가 얼마나 책들을 애지중지하는지 실감하게 해준다.

특히 그는 통문관의 3대째 주인으로 1대 고문서계의 독보적 존재인 이겸노 선생의 손자이기도 하다. 1934년 금항당으로 개점해 1945년 해방 직후 통문관으로 상호를 변경하여 지금에 이르게 됐다.

그렇다면 통문관 주인이 되기 전에도 고서수집가였던 이종운 관장이 제일 아끼는 책은 무엇일까? “구한말 순종황제가 즉위할 때의 예식규범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행사장 팸플릿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아요. 그 안에 설명들이 아기자기하게 그림으로 그려져 있어서 재밌거든요. 매우 귀한 자료기도 하고요.”

이외에도 인사동 곳곳에서 전통을 이어가는 ‘인사동 토박이’로는 정일표구사, 송도직물, 화안가구가 있다.

올해로 55년째 표구일을 하고 있다는 ‘정일표구사’ 김권영 대표. 표구는 그림을 보기좋게 족자나 병풍 등의 형태로 만드는 작업이다.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음에도 표구일을 대하는 그의 손길은 여전히 세밀하고 정성스럽다. 점점 표구 일을 하는 사람이 없어져 이제는 표구사의 맥이 아슬아슬한 지금, 그의 존재는 표구사의 희망이다.

표구비단점으로는 인사동에서 제일 유명한 ‘송도직물’이 있다. 방희문 사장은 한국전 당시 충남 공주에서 양단 짜는 기술을 배워 표구비단 공장을 차렸다. 그의 고운 비단은 지금까지도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

한편 전통가구를 제작하는 ‘화안가구’는 한국 가구 특유의 단순하고 질박한 맛을 살려 선보인다. 사방탁자, 문갑 등의 가구를 그대로 재현하면서 동시에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전통과 현대의 자연스러운 조화를 유도한다. 특히 제작 시 천연 송진액으로 열두 번씩 마감하는 등 장인정신을 발휘하고 있다.

시간의 세례를 받은 물건은 견뎌온 시간만큼 조금씩 낡아가지만 그 가치는 더욱더 빛이 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빛이 나기까지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진 사람들의 장인정신이 뒷받침됐을 것이다. 어쩌면 인사동에서 ‘진짜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이들이 인사동의 전통을 지탱하는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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