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남’에 숨어 있는 근대성
‘짐승남’에 숨어 있는 근대성
  • 김빈나 기자
  • 승인 2009.09.19 2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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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한 남자 만들기

박노자 지음 / 푸른역사
236쪽 / 1만2천9백원
최근 이슈가 됐다 ‘사건 발단 책임자(?)’의 출국과 함께 막을 내린 듯한 ‘2PM 재범 사건’. 하지만 지난 16일(수) 출간된 『씩씩한 남자 만들기』의 시선을 따라가면 이 사건은 결코 매듭지어진 일이 아니다. ‘재범’의 행동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보자는 것일까, 아니다. 이번엔 한 아이돌 가수에게 꽂혔던 화살을 정반대로 돌려 그 화살을 던진 우리를 보자는 것이다.

박노자씨는 그동안 『당신들의 대한민국 1, 2』와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등을 통해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들춰 왔다. 『씩씩한 남자 만들기』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앞의 책들이 미래지향적으로 한국이 나아갈 방향까지 비교적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면 이 책은 거꾸로 이상적 남성성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는 근대 이후 한국을 지배한 이상적 남성성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한다. ‘강한 정신력, 튼튼한 육체, 국가에 복종하는 충성심 또는 좋게 말하면 애국심’이다. 조선시대와 일제 식민지 시대의 남자는 자신을 희생해 국가에 충성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고 토목 사업과 개발 붐이 일던 시대엔 스포츠를 통한 심신단련이 장려됐다. 그 연장 선상에 오늘날의 몸만들기 열풍과 ‘짐승남’이라는 문화 코드가 있다. 시대에 따라 약간의 변동은 있었지만 ‘씩씩한 남성성’은 줄곧 선호된 것이다.

그러나 의문이 든다. 정말 근대 이후  형성된 남성성의 계보가 현재까지 내려올까. 군국주의가 사실상 종말을 고한 현재의 씩씩한 남성상은 근대 민족주의의 풍토 속에서 자란 남성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을까.

한국의 현실을 더듬는 저자의 예리한 시각이 여기서 드러난다. 과거 씩씩한 남성성의 대명사였던 ‘힘’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력으로 치환됐다는 것이다. 기업의 규칙을 학습하고 훈련에 열심히 참여해 ‘군사화된 육체와 정신을 가진 남성’이 결국 높은 생산성과 경제력을 거머쥐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력 있는 남성과 근육질의 남성이 본질적으로는 같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래서 한국의 현실을 우려한다.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 ‘기업에 대한 복종’으로, ‘근육’이 ‘경제력’으로 치환된 것이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안에 내재한 씩씩한 남성성의 계보를 걷어내기는커녕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한다. ‘재범’을 향한 손가락질에 은연중 깔린 사고는 다음과 같을지 모른다. ‘남자라면 군대에 가야 제 구실을 하지. 군대도 안 간 주제에 돈은 실컷 벌고 한국을 욕해?’

물론 과거의 산물이라도 현재에 유용하다면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이어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말미에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이젠 생산에만 급급하지 않고 가족과 사회를 돌보는,  배려하는 남성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돌봄의 남성’을 선호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씩씩한 남자 만들기는 지금 이 순간도 우리가 동참하는 현재진행형의 프로젝트다. 이젠 우리 사회의 관성을 이겨내고 남성성의 방향키를 달리 돌려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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