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개념어’를 알려 드립니다

‘특권’ 뜻하던 시민권, 자유·사회권적 개념으로 확장
한국에서는 폐쇄성 극복 위해 ‘포용적’ 시민권 대두

“시토아앵, 시토아앵!(시민동지)”
근대 사회의 여명을 연 프랑스 대혁명. 민중은 종전의 호칭인 ‘무슈’나 ‘마드모아젤’ 대신 서로를 이렇게 불렀다.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한 시민들의 투쟁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는 근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시민으로서 갖는 권리’를 의미하는 시민권(Civil right)은 고대부터 시작된 개념으로 그 원형은 역설적이게도 폐쇄적·특권적 신분을 뜻한다. 어원인 ‘Civitas’는 ‘로마 시민(Civis)의 지위’를 뜻하며 이는 공동체 성원으로 군 복무를 했던 남성에게만 부여되는 특권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을 통해 이렇게 규정한 시민권은 그 특수성과 협소함으로 비판에 직면한다. 키케로는 ‘만민법’을 통해 시민권을 만민에게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가이우스는 ‘정치적 결정권’에 국한된 기존 시민권을 재산권과 신체의 자유에까지 확장시켰다.

근대에 들어서 시민권은 대체로 공권력에 대항하는 ‘자유권’적 성격을 띠었다. 자유권은 생명권·재산권 등 개인의 자유로운 영역에 국가 권력의 간섭 또는 침해받지 않을 권리다. 로크는 시민권을 정부의 권력남용을 저지하고 공공선을 보호하도록 견제하는 권리로 이해했고, 이 시기에 쓰인 버지니아 기본권 선언과 미국, 프랑스 헌법은 자유권을 보장할 것을 천명했다. 19세기엔 자유권적 성격이 평등권으로 확대되고 그에 따라 일반 시민의 투표권 획득이 가능해졌다.

현대의 시민권은 더 많은 개인과 집단을 포용하는 ‘사회권’적 성격까지 확장돼 국민이 생존을 유지하거나 생활을 향상시켜 ‘인간다운 생활’을 하도록 국가에 적극적 배려를 요구한다. 특히 1980년대 초부터 서구에서는 복지국가가 후퇴하고 신자유주의가 도래하면서 축소된 시민권을 재조명하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됐다. 이때 재조명된 마셜의 ‘사회적 시민권’ 담론은 시민권이 참정권, 정치권, 사회권 모두를 포함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사회경제적 약자에 대한 복지와 보장을 주장한다.

한국은 형식상으로는 모든 국민에게 시민권을 주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분단과 전쟁으로 인해 반공주의 국가에 대한 충성 여부로 시민과 비시민을 구분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좌익 세력은 재산권, 더 나아가 생명권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또 뿌리 깊은 순혈주의 관행은 외모와 혈통으로 실질적 시민을 미리 규정하는 ‘생물학적 시민권’ 개념으로 나타나 혼혈인의 시민권을 사실상 박탈했다.

그러므로 폐쇄적 정체성을 극복하기 위한 한국적 맥락의 ‘포용적 시민권’이 요구되며 이 범주에는 집단 인지적 시민권, 다문화적 시민권, 전 지구적 시민권이 포함된다. 집단 인지적 시민권은 페미니스트 아이리스 영이 여성을 포함한 소수집단 구성원에게 집단적 특성에 따른 시민권을 줄 것을 주장하면서 등장했다. 여기서 파생된 다문화적 시민권은 특정한 종족 집단이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 때문에 차별받지 않을 권리로 캐나다의 정치철학자 킴리카는 다문화적 시민권이 자치권과 집단 대표권, 다문화권, 차별보상권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는 다문화 가정과 혼혈문제에 적용돼 사회통합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개념이다. 전 지구적 시민권은 국력의 격차에 따른 시민권의 불균등한 발전을 막기 위해 보편적 인권을 세계적 제도로 현실화하려는 시도로 논의된다.

시민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요체이며, 시민권은 헌법을 통해 보장받는 가치인 탓에 당연시됐다. 그러나 용산 참사 이후 언론법 개정과 국가인권위원회 축소가 자행되면서 ‘시민사회의 위기’라는 말이 곳곳에서 들려오는 요즘, 고대에 시작한 시민권 개념은 한국 사회를 읽는 핵심 키워드로 아직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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