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비평 창간]

일본비평

서울대일본연구소 지음 / 그린비
351쪽 / 1만7천원
서울대 일본연구소가 국제학연구소 산하 연구센터에서 독립된 지 4년 9개월 만에 대중학술지 『일본비평』을 창간했다. 초대편집장 윤상인 교수(한양대 일본언어문화학부)는 “일본연구의 개방적 담론 공간의 창출을 위해 『일본비평』을 창간했다”고 설명했다. 책은 ‘말하기’가 아닌 ‘말 걸기’를 시도하며 권위에 의한 일방적 전달보다 소통 확보를 지향한다. 창간호의 특집 주제는 ‘현대 일본사회 형성과 미국’으로 ‘미국’이라는 표상이 일본 사회 내에서 어떤 함의를 갖는지 보여준다. 총 5편의 논문이 미국과 전후 일본에 관련된 논제를 망라하고 있다.

박진우 교수(숙명여대 일본학과)는 「상징천황제와 미국」에서 맥아더 장군과 히로히토 천황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일본의 ‘결혼’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미국 점령정책의 일환인 ‘평화주의자로서 천황제의 상징화’는 천황의 전쟁책임을 회피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수많은 희생을 야기한 전범이었던 히로히토 천황은 독립 후에도 미국과의 의존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하며 천황의 전쟁책임을 회피했다. 이로써 상징천황제는 동아시아에서 되풀이되는 과거사 문제 갈등의 근원이 됐다.

 ‘원폭 위령비’의 “편안하게 잠드소서. 잘못은 반복하지 않을 테니까”라는 글귀의 주어는 분명하지 않다. ‘잘못’의 주체는 원폭을 투하한 미국도, 전쟁을 일으킨 일본도 아니다. 권혁태 교수(성공회대 일본학과)는 「히로시마/나가사키의 기억과 ‘유일 피폭국’의 언설」을 통해 ‘원폭 위령비 주어논쟁’에서 “침략과 침략전쟁이라는 가해와 원폭이라는 피해 사이에서 갈등해온 전후 일본사회의 비틀림”을 발견한다. 미국의 원폭 사용은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한 대응이었다. 따라서 미국에 대한 책임 추궁은 일본의 책임론을 환기시키는 ‘가해와 피해의 순환’을 불러온다. 이를 차단하기 위해 미국에 대한 증오는 일찍부터 일본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권 교수는 이로써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미국에 대한 분노도 평화주의라는 괴물에 흡수돼버렸다”고 말한다.

이런 기획특집 논문 외에도 『일본비평』의 지면은 서평, 특별기고, 연구논단, 강연록 등으로 구성돼 일본국가, 사회, 문화에 대한 다채로운 이해를 돕고 있다. 윤상인 교수는 편집자의 말에서 일본연구의 의의를 “궁극적으로 한국인의 삶과 현실을 깊고 넓게 들여다보기”라고 밝혔다. 한국과 일본은 전후 미국의 헤게모니를 내면화하는 내셔널리즘과 이에 대해 지역국가 간 갈등구조를 강화하면서 ‘이란성 쌍둥이’와 같은 유사한 행로를 보였다. 이렇듯 전후 ‘일본과 미국’에 대한 논의는 ‘한국과 미국’과 같은 주제를 끌어들이는 논의로 확장돼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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