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의 역할 재정립할 때

서울대 생협은 대학과의 모호한 관계 설정과 수익 사업 부족으로 인한 독립적 운영의 어려움, 적은 조합원 수로 인한 대표성 부재, 조합원 혜택의 부족, 열악한 노동자 처우 문제 등의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는 생협 설립 과정부터 ‘운영의 합법화 및 절세’에만 초점이 맞춰져 학생, 직원, 교수 이른바 생협 3주체가 생협의 역할에 대한 충분한 합의를 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생협의 설립 과정  

1999년 8월부터 2년여에 걸친 서울대 생협의 설립 과정은 경제적 민주성 확립, 친환경적 생활 등 생협 운동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운영의 합법화 및 절세’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1999년 8월 5일 교육부가 실시한 종합감사 결과, 당시 생협의 전신인 생활복지조합(생복조)은 국유 재산인 서울대의 시설을 영리추구 목적으로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는 ‘임의단체’라고 지적돼 합법적 기구로의 전환을 요구받았으며, 국유재산관리법에 따른 임대 사용료의 미납을 지적 받았다. 또 교육부 감사에서는 생복조의 복지 시설 위탁 경영자 선정 방식이 공개 입찰이 아닌 학교가 조직한 ‘사업체선정위원회’의 선정에 따르는 임의적 방식을 통해 결정돼 사업자 선정 과정의 투명성 제고도 요구됐다.

 

이에 따라 서울대는 본부와 생복조를 중심으로 99년 8월 공포된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 의거해 생복조 법인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생협이 출범하게 되면 당시까지 납부하지 않았던 ‘국유재산사용료’,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약 15억 원에 이르는 세금 부담이 발생해 문제가 됐다. 이에 서울대는 재정경제부ㆍ국세청으로부터 대부분의 세금 면제 승인을 받았으며, 법인세의 경우 대학 발전기금에 고유목적사업준비금으로 기탁함으로써 100% 절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처럼 본부와 생복조가 추진한 서울대 생협 설립 과정은 합법적 운영 구조의 마련에만 집중된 한계가 있다.

 

▲ 독립성 부족  

서울대 생협은 법률적으로 대학과는 별개인 독립된 사업체이지만 실제로 예산, 실무 집행에 있어 학교로부터의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생협은 재정적으로 본부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있다. 생협의 후생복지시설은 대학으로부터 무상 임대받은 것인데 시설 임대계약에 따르면 시설 유지 및 보수는 사용자 부담으로 명시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 시설 유지나 보수시 상황에 따라 생협이나 본부가 비용부담 정도를 결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학과 생협의 마찰이 발생하면 시의적절한 시설 보수나 유지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또 대학본부는 생협의 이사장, 부이사장, 당연직이사에 각각 본부 보직교수인 부총장, 학생처장, 학생부처장을 당연직으로 임명한다. 생협 사무국의 관리책임자인 부장도 대학 직원 중에서 임명되고 있다. 즉 생협의 의사결정 역시 본부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외국어대, 동경대의 경우 교수협의회에서 추천된 교수 이사 가운데 선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조선대의 경우 출범 직후 생협과 대학의 효율적인 협조와 견제를 유도하는 자문위원회를 꾸려 생협의 운영과 관련해 두 주체 간 마찰이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자문과 조정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교수 이사 이정인 교수(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는 “독립된 자체운영은 생협 운영의 원칙”이라며 “일본 생협의 경우 컴퓨터 공동구매 서비스와 같은 다양한 수익 사업을 실시해 독립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전문경영능력 부재  

한편 책임 경영자가 없는 생협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의사결정구조의 상위에 위치한 이사장, 부이사장의 경영 전문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현재 서울대 생협은 보직교수를 당연직으로 임명하고 있다. 2003년 6월 생협이 삼일회계법인에 의뢰해 작성된 장기발전계획 수립 보고서는  “이로 인해 생협 운영에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임기가 2년이므로 생협 사업운영 지속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 조합원의 대표성  부재  

서울대 생협의 조합원은 교수 48명, 학생 323명, 직원 162명 등 총 533명으로 서울대 전체 구성원이 약 4만 명에 이르는 것을 볼 때 조합원의 비율은 2%에도 못 미친다. 즉 대학 구성원의 의견 수렴이 부족한 상태에서 생협 운영진의 의견대로 복지사업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해 4월 생협 운영위원회의 결정으로 학관 학생식당 백반 메뉴 가격이 1300원에서 1500원으로 인상되자 일부 학생들은 생협의 운영 결정권, 대표성에 불만을 제기했다. 당시 학생위원회 부위원장 이혜온씨(언론정보학과ㆍ01)는 “식대 인상은 단지 생협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비 조합원들의 의견 수렴이 필수적”이라며 “학생회와 같은 자치 단위와의 연계를 통한 의견 수렴으로 대표성 문제를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조합원 혜택 부족  

서울대 생협의 조합원 대표성 문제는 조합원 확대가 대안으로 제시되나, 현재 서울대 생협의 조합원 혜택은 가입을 유도하기 위한 기제로는 미약한 실정이다. 최근 한창 논의 중인 도서 마일리지 혜택에 대해 생협 사무실측은 도서 가격의 0.2∼0.3% 제시했는데 이에 따르면 5천원의 혜택을 받기 위해 250만원 가량의 도서를 구입해야 한다. 조선대의 경우 조합원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이화여대는 문화유적 답사와 같은 조합원 혜택을 마련하고 있다. 서울대 생협도 이와 같은 다양한 조합원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조합원의 후생복지 향상을 위한 적극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대학 구성원 중 조합원 비율이 낮아 혜택 부여의 필요성에 대한 입장도 엇갈리고 있다. 부이사장 황준연 교수(학생처장)는 “1만원인 조합원 출자금은 조합원과 비 조합원의 차별성을 가져오지 못한다”며 “생협은 조합원의 배타적인 이익만을 고려하지말고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후생복지 사업을 운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생협 학생위원장 이정석씨(외교학과02)는 “생협의 주인은 출자를 한 조합원들”이라며 “운영 역시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 열악한 노동자 처우  

김창수 생협노조 위원장은 “생협은 잉여금을 시설 재투자, 법정 적립금 축적 등에만 사용하고 있어 현재 비정규직 확대, 변형 근로제 실시 등 노동자 처우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생협은 안정적인 인건비 지급을 위해 수익 사업 창출과 복지 시설의 직영을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