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6호 9월 14일자 7면
“영화 불온하게 보기” 기사를 읽고

1년 전 이맘때쯤 신촌에 있는 한 독립영화관에서 「나의 친구, 그의 아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뻔한 불륜 영화일 거라는 생각에 친구와 이상야릇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상영관에 들어갔다. 그러나 2시간 정도의 상영시간이 끝난 후 영화관에서 나온 우리 둘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무런 대화도 주고받지 못했다. 자본의 굴레에 예속된 영화 속 예준과 재문의 친구 관계가 훗날 우리의 모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함이 나와 친구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지난주 『대학신문』에서 「나의 친구, 그의 아내」를 반자본주의 영화로 소개한 기사를 읽었다. 글을 보면서 1년 전 봤던 예준과 재문의 모습이 현재 우리의 모습과 오버랩 됐다. 자본주의적 계급구조에 결박돼버린 그들의 우정은 단순히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무선’의 감정으로 묶여 있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자본이라는 ‘유선’으로 변질시켜버리는 자본주의의 가장 불편한 모습은 현실 속 우리의 자화상이었던 것이다. 사랑, 우정, 선행, 배려라는 온갖 아름다운 이름으로 포장된 자본의 횡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직장에서, 학교에서, 텔레비전 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내면에서 자행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무서운 사실은 우리 자신부터가 자본주의의 이러한 천박함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고려되는 요소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경제력’이 1, 2위를 차지하는 통계결과를 보고도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예준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가 지닌 가장 천박한 속성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으며 이러한 비판 속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얼마 전, 저녁식사를 하다가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로 대답했습니다’라는 한 자동차 광고의 카피를 보고 수저를 내려놓은 적이 있다. 자본의 천박함이 잔인함을 넘어 역겨움까지 이르게 된 현 세태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광고였다. 이 30초짜리 광고를 보고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의 순수함은 아직 더럽혀지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분노할 수 있다면 우리의 시대정신은 아직 잠들지 않은 것이다. 그 불편함과 분노의 감정이 희망의 씨앗이 돼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품격 있는 꽃으로 피어날 수 있기 바란다.
 

김재웅
교육학과·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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