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7호 9월 21일자 4면
“아파도 병원 못 가는 ‘이주아동’” 기사를 읽고

이른 아침 어린 자녀의 등굣길에 만난 엄마들은 무리지어 이야기꽃을 피운다. 하지만 그 무리에 끼지 못하고 한편에 비켜서 있는 필리핀 출신 엄마 한명. 이들 간에는 무의식중에 마음의 벽이 높다랗게 쌓여 간다. 같은 시간, 아이들은 교실에서 TV를 통해 스포츠 경기를 관람한다.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 같이 목청껏 대한민국을 응원한다. 얼굴색이 다르고 출신 국적이 달라도 모두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는 아이들. 아이들은 외톨이처럼 홀로 있는 필리핀 출신 엄마에게 다가가 크고 밝은 목소리로 “마부하이~”라고 인사하며 마음의 벽을 허문다.

지난 5월부터 ‘다문화 응원 캠페인’의 일환으로 시작한 공익 광고 내용이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포용과 배려를 호소하는 이 광고에서 볼 수 있듯 이들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이주아동’ 문제로 눈을 돌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아동은 약 3만명에 육박한다는데 우리 사회는 이들에 대한 관심은커녕 이주아동의 ‘존재’조차 기억에서 지워버린 듯하다. 이는 기본적으로 대부분이 미등록자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반감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불과 20여 년 전,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삼촌들도 TV에서나 들어보던 먼 나라로 가서 그 나라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을 하고 외화를 벌어오던 시기가 있었다. 그들이 ‘외화벌이의 역군’으로 칭송받던 때가 있었다. 이들의 이주노동에 대한 평가는 제쳐두고라도 이주노동자의 경험을 공유하는 우리 사회가 이토록 이주노동자에게 냉담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주노동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비우호적인 태도를 고려한다면 이주아동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러나 이주아동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국에 거주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실적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능력도 여건도 안 되는 이주아동에게 냉담한 시선을 보내는 것, 그리고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불법체류자’라는 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다. 이주아동을 ‘불법체류’라는 법적 심판의 대상으로 바라보면 이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체류권, 교육권, 보호권은 온데간데없게 된다. 이렇게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지 못한다면 결국 이들은 빈곤의 악순환을 끊지 못하고 그들의 부모가 손발이 잘린 공장에서 출입국관리사무소를 두려워하며 평생을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목소리를 낼 통로도 없고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조차 되지 않은 채  이주아동의 존재조차 망각한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는 그만큼 우리에게 타인을 끌어안는 포용, 타인과 함께하는 연대의식,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제는 이주아동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 귀 기울일 때다. 

이지혜
정치학과·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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