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를 꿈꾸다
‘공화’를 꿈꾸다
  • 이대한 기자
  • 승인 2009.09.2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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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상 기획] 새로운 공화주의와 한국 사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민주(民主)’와 ‘공화(共和)’ 두 마디로 압축하고 있다. 시민혁명 없이 민주공화국으로 태어난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이름에 걸맞은 국가로 성숙하기 위한 질곡의 세월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두 주춧돌 가운데 특히 주목받은 것은 ‘민주’였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를 갈구했고, 오늘날 우리는 적어도 절차적 민주주의를 달성한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민주화의 부푼 꿈과 달리 후진적인 정치문제는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민주’가 우리에게 분명한 이정표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공화’의 꿈은 무엇이며, 공화주의는 우리 사회에 어떤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대학신문』은 최근 들어 재조명 받는 공화주의를 검토하고, ‘공화’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실천적 함의를 모색해 본다.


최근 학계를 중심으로 공화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상적 연원이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공화주의는 국가를 공공의 것(Res publica)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규범을 제시하는 정치사상이다. 지난 수백 년간 공화주의는 자유주의나 사회주의에 밀려 학계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긴 침묵을 깨고 독특한 ‘자유론’과 함께 재등장한 공화주의는 기존 담론이 한계에 부딪힌 정치사상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새로운 공화주의의 등장으로 개인의 자유와 시민적 참여를 사이에 두고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가 벌여온 오랜 논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사이의 제 3의길, 공화주의

공화주의는 오랫동안 자유주의와 대립각을 세워왔다. 십수년 전만 하더라도 공화주의는 공동체주의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됐기 때문이다. 오늘날 시민적 공화주의라고도 불리는 공동체주의는 개인의 자유보다 시민적 참여를 강조하는 시민 윤리를 담고 있다. 시민적 공화주의의 내용은 이탈리아 역사가 프랑코 벤튜리가 말한 ‘시민적 삶을 추구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벤튜리는 시민적 삶을 ‘공적인 일에 참여해 공익에 기여함으로써 자아실현을 이루는 삶’이라고 설명했다.

자유주의자들은 공화주의가 자신과 공동체를 하나로 만드는 것만이 인간이 실천해야할 덕이라는 일원론적 규범을 강요한다고 비판해왔다. 이는 프랑스 혁명기에 공포정치를 초래한 ‘자코뱅의 신념’이라는 것이다. 공화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은 ‘적극적 자유 대 소극적 자유’ 논쟁을 통해 더욱 본격화됐다. 자유주의 사상가 이사야 벌린은 공화주의자들의 자유를 ‘적극적 자유’로 규정하고 이를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율’이라고 정의했다. 벌린은 여기엔 자기 삶을 지배하려면 인간은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가정이 내포돼 있고, 이는 전체주의의 존재론적 전제라며 비판했다. 적극적 자유론의 기저에는 비이성적 인간들은 이성적인 인간들과 공동체의 지도에 따라야 한다는 논리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20세기 공화주의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포칵은 적극적 자유론이라는 지적을 받아들이면서도 시민적 참여의 강조가 전체주의의 전제가 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인류가 여전히 전체주의의 끔찍한 악몽을 기억하는 상황에서 적극적 자유는 끊임없이 의심의 눈초리에 시달렸다. 대신 자유주의자들은 자유를 간섭의 부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보는 ‘소극적 자유론’을 주장했다. 개인 그 자체가 독립된 왕국이며 정치는 개인의 왕국을 경영하는 데 외부의 간섭이 없도록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승래 교수(청주대 인문학부)는 “시민적 덕성을 위한 정치 참여 요구가 자유와 대립된다는 소극적 자유관이 퍼지면서 자유주의자들이 ‘자유’에 대한 헤게모니를 장악했고, 한동안 공화주의를 반동적이라고 몰아붙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십 년 동안 공화주의자들에게 불리하게 전개되던 국면은 1990년대 들어 반전되기 시작했다. 역사학자 퀜틴 스키너에 의해 본래 고전적 공화주의에서는 개인적 자유와 시민적 참여가 대립하지 않는다는 점이 지적됐고, 이는 1990년대 후반에 철학자 필립 페팃을 통해 ‘비지배(Non-domination) 자유’라는 개념으로 구체화됐다. 곽준혁 교수(고려대 정치외교학과)는 “키케로나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의 재해석을 통해 비지배 자유 개념을 도입하면서 공화주의자들은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양 극단 사이로 난 제3의 길을 말할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간섭받지 않을 자유에서 지배받지 않을 자유로

비지배 자유란 타인의 자의적 의지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자의적 지배 권력의 부재라고도 할 수 있다. 비지배 자유는 소극적 자유나 적극적 자유와 무엇이 다르기에 오늘날 제3의 길로서 주목받고 있을까. 우선 비지배 자유는 선택 ‘행위’의 자유로움에 초점을 두는 소극적 자유와 달리 지배의 부재라는 ‘조건’을 자유로 정의한다. 일찍이 18세기에 영국의 공화주의자였던 프라이스는 이를 노예의 자유라는 예시를 통해 설명했다. 그는 “인자한 주인을 만나 간섭받지 않는다면 노예도 자유로운가?”라고 반문했다. ‘행위’ 자체로 판단하는 소극적 자유론에 따르면 이 노예는 자유롭다. 그러나 노예의 결정은 결국 주인의 인자함에 의지하는 종속적인 ‘조건’에 놓여 있는 것이기 때문에 비지배 자유의 기준에 따르면 자유라 할 수 없다.

비지배 자유는 자율(Self-rule)을 핵심으로 보고 자유를 시민적 능력을 행사하는 것이라 정의한 적극적 자유론과도 분명히 구별된다. 시민적 덕성은 비지배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나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부산물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법을 통해 비지배적 조건이 마련되고 잘 유지된다면 항상 공적 활동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시민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비지배 자유가 갖는 가장 중요한 실천적 함의는 이전의 자유주의자들이 무조건 배격하던 국가의 ‘간섭’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의 비지배적 조건을 구축하기 위한 간섭은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공의 자유를 도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사회주의나 전체주의와도 거리가 있다. 곽준혁 교수는 “비지배적 조건이란 ‘상호적인 것으로’ 국가가 시민을 억압하려 할 때 이들은 국가가 사회에 간섭하는 동일한 이유로 국가 권력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지배적 상호성은 국가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동시에 개입의 한계를 설정하는 일관된 준거로서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비지배적 상호성은 특히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건전하게 재정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오늘날의 세계 경제위기는 시장의 무조건적인 자유가 어떤 파국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를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신자유주의 역시 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시장 개입을 어느 수준에서 정할지에 대한 적절한 원칙은 아직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화주의적 원칙은 새로운 기준으로 작동할 수 있다. 비지배 원칙은 특정 경제주체가 시장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것을 막는 규제를 정당화하면서도 국가 역시 시장에 대한 절대적 지배권을 행사하면 안 된다는 개입의 한계를 설정해주기 때문이다.

새로운 공화주의가 한국 사회에 말하다

새로운 공화주의는 한국 사회에도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우선 새로운 공화주의는 정치에 대한 냉소가 팽배한 상황에서 공공의 진정한 자유를 위한 시민의 정치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절차적 민주화를 달성했음에도 대의제의 한계나 정치적 무관심 때문에 자본이나 기득권 세력의 지배적 조건이 계속 공고해지고 있다. 또 ‘뉴타운 선거’에서 드러났듯 민주적 의사결정이 사적 이해와 다수의 논리에 따라 이뤄지면서 사회의 공공성이 파괴되는 실정이다. 김경희 교수(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는 “이제 시민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민주화 담론을 넘어 사회의 공공성과 상호 소통을 중시하는 공화제의 이념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민주’와 ‘공화’가 함께 가야만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고 비지배적 조건을 구축해 공공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공화주의자들은 그 실천적인 방안으로 양원제(兩院制) 도입 등을 검토하고 있다. 김경희 교수는 “시민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유도하고 민의를 더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하원을 도입한다면 사회의 주종적 예속관계를 개선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주의는 공공부문 회복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강력한 근거도 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 도입으로 시작된 민영화와 감세 바람이 최근 더 가속화되면서 공적 영역이 계속 축소되고 있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 사회복지망을 통해 공유되던 책임이 개인에게 전가되고 있고, 가장 기본적인 의료보건조차 의료민영화 논의로 위협받고 있다. 이렇게 공적 영역이 약육강식의 시장논리가 작동하는 사적 영역으로 재편되다 보면 결국 대기업을 비롯한 일부 기득권 세력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화주의는 이에 대해 비지배 자유라는 분명한 원칙으로 제동을 걸 수 있다. 조승래 교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개인에게 주어진 사회적 조건이 평등하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강자의 이익을 대변할 뿐”이라며 “사회의 공공 영역을 확보해야만 진정한 공화국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 한국 정치학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공화주의. 앞으로 공화주의가 사회의 비지배적 조건을 구축하는 유의미한 실천적 이념으로 자리 잡으려면 학자들의 고민과 더불어 정치인과 시민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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