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고든이 포착한 북한의 평범한 일상과
「송환」이 보여주는 사상을 초월한 휴머니즘
진정한 소통 위한 한줄기 희망

 

그래픽: 유다예 기자 dada@snu.kr
1. 벽안의 방문자가 바라보는 북한의 일상

「천리마 축구단」  (감독: 다니엘 고든, 2002), 「어떤 나라」  (감독: 다니엘 고든, 2004)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독재정권이 지배하는 공산주의 국가이자 핵무기를 갖고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나라? 그래서 ‘악의 축’으로 명명된 국가? 단지 그것만으로 북한을 다 안다고 할 수 있을까.

1966년 월드컵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격파한 ‘사건’을 계기로 북한에 관심을 두 개 됐다는 다니엘 고든 감독은 체제 이면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촬영과정은 매우 고됐다. 북한 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기까지는 5년이 소요됐고 촬영을 위해 북한을 11차례 방문하면서 그의 카메라는 김일성 주체사상과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한 꺼풀 벗겨 내고 북한 주민들의 일상을 담아냈다. 수년간 북한 사람들을 지켜본 이 푸른 눈의 방문자는 “국제사회가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과 달리 내가 본 것은 평범한 일상이었다”고 고백한다.

「천리마 축구단」은 1966년 영국 월드컵에서 북한의 활약상을 16강전에서 강호 이탈리아를 맞아 결승골을 넣었던 박두익을 비롯해 박승진, 리명철 등 선수들의 인터뷰와 당시의 기록영상을 통해 전달한다. 열악한 훈련 환경과 공산국가인 북한을 탈락시키려는 영국의 음모에도 8강까지 진출하는 기적을 일군 북한 축구팀에게 영국의 미들즈브러 주민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낸다. 이념을 초월해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북한팀의 멋진 플레이였다. 40여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북한팀의 사인을 소중히 갖고 있다는 사람들과 북한팀의 8강전을 응원하러 리버풀까지 갔다는 미들즈브러 주민들. 축구로 교감하는 이들을 보며 북한과도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소통을 기대하게 된다.

 「어떤 나라」는 열세 살 현순이와 열한 살 송연이가 집단체조 선수로 선발되기 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영화는 노동자 계급인 현순이네와 엘리트 계급인 송연이네 가족을 관찰하면서 반찬은 뭐가 나오는지, 공휴일에는 무엇을 하는지 시시콜콜한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체조수업이 싫어서 집에 거짓말하고 놀러 갔다가 부모님께 혼나거나, 아빠 몰래 엄마한테만 비밀 이야기를 하는 등 그들의 삶은 우리네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군님께 보여 드리고 싶어서’ 춤을 춘다는 현순이의 말에서는 꿈 많은 열세 살 아이의 천진난만함이 묻어난다. 집단체조는 이데올로기의 상징으로 평가되지만 겨우 열 살이 갓 넘은 아이들의 열정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비약일 것이다.

현재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 핵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1993년 제1차 북핵 위기 발생 이후 제네바 핵협상(1994), 9·19 공동선언(2005), 2·13 합의(2007) 등의 협상을 통해 북핵문제에 관한 합의가 이뤄져 왔지만 번번이 파기되고 재합의되는 등 악순환은 계속돼 왔다. 더불어 지난 24일 유엔총회본회의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은 우리를 ‘위험한 비탈’로 끌어내리고 있다”고 한 것에서 보듯 북한은 여전히 ‘악’으로 여겨진다. 물론 이것은 얼마간 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틀을 벗어나 북한의 참모습을 제대로 보려 한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현 상황을 타개해 갈 진정한 열쇠는 서로의 참모습을 선입견 없이 볼 수 있는 용기일지 모른다.

2. 이념을 넘어선 유대의 실마리

「송환」 (감독: 김동원, 2003)

‘송환(送還)’은 포로나 불법 입국자 등을 본국으로 돌려보낸다는 의미를 갖는 단어다. 전쟁이 끝난 직후 전쟁포로나 간첩들을 원적지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제네바협약에 의하면 송환은 당연한 절차임에도 우리나라와 북한과의 송환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남과 북 사이에는 서로 다른 ‘사상’과 ‘이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과 북의 수반이 악수한 6·15공동 선언과 함께 사상전향을 거부하고 장기 복역한 남파간첩,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녘으로 송환된 지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김동원 감독의 「송환」은 비전향 장기수들이 석방 뒤 송환되기까지 그들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로 서로 다른 체제 탓에 멀게만 느껴졌던 그들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임을 깨닫게 해준다.

1992년 이른 봄,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좌파세력이 뿔뿔이 흩어지던 때. 김동원 감독은 출소 후 갈 곳이 없던 비전향 장기수 조창손씨, 김석형씨를 봉천동에 데려오게 되고 그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처음엔 야유회에서 김일성 찬양가를 부르는 그들에게 거리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북에 둔 손녀딸 생각에 감독의 어린 아들을 귀여워하는 조창손씨와 주민들과 친하게 지내는 장기수들에게 인간적인 정을 느끼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감독의 독백은 한층 부드러워진다. 그러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으로 2000년 9월 2일 63명의 비전향장기수가 모두 북으로 송환되고 난 후 감독의 후배는 북에서 조창손씨를 만나 안부를 묻는다. 친했던 남한 사람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모두 부르며 인사를 전하는 그의 얼굴에는 남한에 두고 온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쓸쓸함이 묻어나온다.

비록 서로 간에 넘지 못한 이념의 ‘선’이 있었지만 서로 이해하고 친분을 맺는 데  그것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음을 보여준 남한 사람들과 북한 장기수들. 「송환」은 서로 이념이 다른 남과 북이 믿음을 바탕으로 대한다면 그 유대관계가 남북한 관계 개선에 한 줄기 희망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남북 간의 인적 교류는 그 이후 5년간 이산가족 상봉이 5차례 열리고 남북 왕래 인원이 8만명을 넘는 등 활성화됐다. 하지만 최근 송환문제에 대한 정부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들이 ‘상호주의’원칙을 내세우며 조건 없는 송환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후 북핵문제로 남․북 관계가 냉각되면서 추가 송환 논의는 자취를 감춘 상태다. 뿐만 아니라 최근 정부는 비핵화와 개방화를 1인 국민소득 3천 달러와 맞바꾸자는 상호주의적 대북정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과연 남북한 민족 간의 유대감은 거래로 생겨날 수 있는 것일까. 물질의 조건부 거래가 아닌 인정의 거래를 말하는 「송환」은 경색된 남북 관계를 풀어나갈 실마리를 시사한다.

장기수 2차 송환 희망자들이 고향으로 송환을 요구하고 나선지 8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그들의 요구 사항에 대한 협상은 진전되지 않고 있다. 이미 장기수 중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고 남은 사람들마저도 75살에서 90살이 넘은 노인들인 상황에서 여전히 고향땅을 밟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은 오늘 하루도 속이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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