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동아시아의 재발견 국제학술대회

동아시아 논의, 현재 진행형

육상효 교수
인하대 문화콘텐츠 학과

 


왜 지금 동아시아의 재발견인가?  지난 18일(금) ‘서남 이양구 회장 20 주기 추모 국제학술대회’가 열린 회의장을 가득 메운 발표자와 청중들이 줄곧 제기하고 대답하려 노력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의문은 집요했고, 대답은 여러 번 시도됐지만 아무것도 완결되진 않았다. 21세기에 들어 벌써 10년이 지나가는 지금 이 질문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이 날의 학술대회는 이 질문의 무게와 그 현실적 절박성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다.

질문과 대답에는 순서가 없었다. 앞의 논문을 뒤가 대답하고, 또 뒤의 논문이 제기한 질문은 앞의 논문들이 대답했다. 생각들은 시간의 배열을 훌쩍 뛰어넘어 머릿속에서 격렬한 생산적 혼란을 만들어냈다. 장인성 교수(외교학과)는 동아시아라는 화두를 들고 모인 서남포럼의 20년이 냉전 종식의 20년과 같다는 점을 간파했다. 결국 ‘동아시아’라는 하나의 사고 단위의 출현이 분명 냉전의 종식과 관련이 있다는 말이었지만, 질문이기도 했다. 그에 대한 대답은 다시 시간을 거슬러 ‘동아시아인의 정체성 형성, 그 장애와 출구’를 발표한 임춘성 교수(목포대 중어중문학과)에게 돌아갔다. 임 교수는 동아시아적 정체성의 발달 단계를 서구에 의한 동아시아의 규정, 동아시아에 의한 서구의 수용, 동아시아에 의한 서구에 대한 응시, 동아시아에 의한 동아시아의 상상 이 네 단계로 발전해 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냉전 종식 이후의 20년은 서구에 대한 응시에서 동아시아 스스로 동아시아를 상상하는 단계로 전이해 오는 시간이었고, 이 날의 주제인 동아시아의 재발견은 이 스스로의 상상력을 더욱 공고히 하자는 언명이었다.

동아시아 스스로 정체성 상상

쟝쯔창 교수(중국 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가 최근 중국의 국학열(國學熱 )이 패권적 중화주의가 아니라 지난 30년의 개혁개방 정책을 철학적으로 재규정하려는 시도라고 한 것은 이 동아시아 자체적 상상력의 일단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그것은 중국 개혁개방의 역사와 전망을 서구와의 대결과 극복이라는 타자화된 규정 속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유교와 국학에 내재해 있던 고유한 정신의 동력 속에서 해명하려는 시도였다. 결혼과 유학에 관한 이혜경 교수(배재대 사회학과)와 스기무라 미키 교수(일본 소피아대 교육학과)의 발표도 서구와의 교류에서 지역 안의 교류로 바뀌어 가는 양상을 추적하고, 이러한 양상이 궁극적으로 생활과 정신, 양 측면에서 동아시아라는 지역적 상상력을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고 했다. 

정치·문화·철학적 상상력의 만남

그럼에도 결정적 대답은 이날 모두에 발표한 최원식 교수(인하대 한국어문학과)와 사까모토 요시까즈 교수(동경대 법학부)에게서 나왔다. 어쩌면 학술대회 전 일정은 두 석학이 제시한 답이 이날의 답이었음을 알아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두 석학이 공통으로 지적한 것은 환경과 북한의 문제였다. 환경의 문제가 동아시아의 초국가적 협력을 필요로 하는 절박한 문제임을 말하는 것이었고, 북한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 동아시아라는 개념의 성립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최원식 교수는 지금 동아시아를 재발견하려는 뜻은 맹목적 서구주의나 협소한 민족주의를 돌파하고, 20세기의 낡은 개념인 자본주의나 사회주의까지도 돌파하는 새로운 동아시아적 모델을 창출하기 위한 실천적 의제들을 정립하려는 의도라고 했다. 사까모토 교수는 발표 내내 과거사에 대한 사과에 게으른 일본의 우익들과 납치 일본인 송환과 북한에 대한 쌀 지원을 같이 연결하는 사이비 인도주의자들에 대해서 날 선 비판을 가했다. 그에 의하면 연방적인 동아시아 공동체는 유토피아적 환상이면서도  대단히 현실적인 환상이었다.  동아시아 공동체가 지역주의면서도 다른 지역에 배타적인 지역주의로 나가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휴머니티고, 그것을 위해서는 감성(Sensibility)의 교류가 필요함을 노학자는 역설했다. 이제야 분명해진다. 왜 지금 동아시아의 재발견인가? 그것은 지금까지 서툰 동아시아 논의들이 반복해 온 일방적인 정치주의적 상상력의 극복이 새로운 시대의 동아시아 논의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임춘성 교수의 ‘상상력’이 사까모토 교수의 감성과 만나고, 이혜경 교수의 생활적 감수성의 교류가 장인성 교수가 말하는 문화적 레벨의 균등화와 만난다. 이 모든 것이 합쳐질 때 정치적 상상력과 문화적 상상력, 그리고 철학적 상상력까지 포괄하는, 최원식 교수가 말하는바 ‘동아시아적 모델’의 진정한 창출이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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