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북카페는 어땠을까
조선시대의 북카페는 어땠을까
  • 김빈나 기자
  • 승인 2009.09.26 2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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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
김풍기 지음 / 푸르메
376쪽 / 1만5천원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여기서 ‘사람’은 단 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구한말 불투명한 조국의 앞날에 시름했던 지식인 계층일 수도, 남성중심 사회구조 안에서 ‘박씨전’으로 자신을 위로했던 조선시대 여성이라는 더 큰 범주일 수도 있다. 활자가 생긴 이래 인류의 가장 오랜 벗이 책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책에 대한 책’이라 자신을 소개한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는 조선시대의 책을 통해 조선의 현실과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을 되짚어본다.

저자는 ‘책의 운명이 인간의 운명을 만들어가는 현장’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려 책을 집필했다고 서문에서 밝힌다. 책이 쓰인 동기부터 시작해 책이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보존되는 모든 과정을 책의 관점에서 바꿔 말하면 이는 곧 ‘출생-성장기-청·장년기-노년기’나 다름없다. 이러한 책의 ‘전 생애’를 여러모로 둘러보면 책의 내용만 이해할 때보다 당대 현실과 사상이 훨씬 입체적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저자는 조선시대 지식인의 서가에 죽은 듯 꽂혀 있던 27권의 책들의 전 생애를 밝혀내 그것에 숨을 불어넣었다. 5년 전 계간지 『북 앤 이슈』에 연재했던 글들을 다시 다듬어 이 한 권으로 묶어낸 것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빠져드는 소설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던 것은 조선시대 지식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첫 장에서 저자는 그들이 탐독했던 귀신 전기(傳奇)집 『전등신화』의 재미있는 내용뿐만 아니라 책의 숨은 배경까지 주목한다. 귀신이 등장하는 비현실 세계는 인간과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라 작자가 처한 현실 및 그의 세계관이 투영된 세계다. 또 조선 지식인들이 귀신을 무서워하면서도 귀신 이야기를 선호한 것은 ‘이계(異界)에 대한 호기심과 욕망’이라는 인간 본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이렇듯 저자는 각 책의 뒷 배경을 나름의 시각으로 분석해 조선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와 함께 나머지 26권의 책의 생애를 좇다 보면 당대 현실과 지식인의 사상이 마저 그려진다. 조선시대 서당에서는 어린 인재들이 『맹자』를 읽으며 유교사상에 기반을 둔 이상적인 정치를 꿈꾸고, 선비들은 사랑방에서 시문을 음미하며 아름다운 글에 대한 미의식을 가졌다. 또 지식인들은 조선과 가까우면서도 긴장관계를 유지했던 중국에 대한 의식을 과감히 활자로 표현했다. 책이 쓰이고 널리 읽힌 뒤 고서(古書)로 보존될 즈음이면 새로운 사상과 현실이 잉태됐고, 이 사상과 현실은 다시 새로운 책을 잉태하며 이 과정을 반복해왔다. 책과 사람의 순환 고리 안에서 사상과 현실은 진보하기도 하고 후퇴하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저자의 관점에 따르면 책과 사람은 돌고 돌지만 늘 같은 자리를 맴돌지는 않는다. 조선시대의 사상과 2009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사상이 다르고, 중세 봉건의식에서 탈피하지 못한 조선전기 지배층보다 현대 민중의 사상이 더 진보했을 수 있음이 그 증거다.

이 책에서 소개한 『태평한화골계전』을 읽으며 옛 사람과 함께 웃고, 『맹자』를 통해 진정으로 민중을 위한 정치가 무엇인지 고심하며, 『발해고』를 통해 잃어버린 땅의 역사를 되새겨보자.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가 위 책들의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더욱이 조선시대보다 진일보한 줄로만 알았던 현대 사회의 어두운 면을 이들에게 투영해보면 새삼 놀라게 될 것이다. 현재 한국이 처한 정치·사회·국제적 현실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는 물론 따끔한 충고도 조선시대의 옛 서가에서 발견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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