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을 외치다
류은숙 지음 / 푸른숲
329쪽 / 1만5천원
독립성이 무기가 돼야 할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대통령 직속 기관이 되고,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 언론인이 사적인 이메일에 반정부적 내용이 포함됐다는 이유로 처벌의 대상이 된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 인권의 좌표가 어디인지 궁금하다.

역사적 인권문헌을 통해 한국사회의 ‘인권’의 현장을 반추해 볼 수 있는 『인권을 외치다』가 출간됐다. ‘인권연구소 창’의 류은숙 활동가가 인터넷 인권전문신문 『인권오름』에 연재했던 37개의 문헌을 상세한 해설과 함께 엮었다. 저자는 인권단체에 몸담으면서 인권에 관한 문헌을 직접 발굴하고 번역하기도 하며 소화하고 체화한 결과물을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인권의 역사에서 근대 인권선언에 등장한 자유·재산·소유권의 함의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다.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 자연권으로 절대시한 재산권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와 민중에게는 실질적 자유의 제한과 궁핍 그리고 가난만을 남겨놓았다. 이에 로베스피에르를 비롯한 혁명적 사상가들과 민중은 재산권을 신성불가침한 ‘자연권’이 아닌 현실 속 ‘사회적 제도’로 보고자 했다. 이에 재산권에 제한을 두며 민중의 복지와 생존을 보장하는 사회권이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향한 열망과 함께 탄생하게 된다.

미국 독립선언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문구는 모든 인간의 ‘천부인권’을 주장했지만 현실에서 여성과 흑인 노예들은 ‘모든 인간’에서 배제돼 왔다. 마찬가지로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에도 전체 인구의 80%인 재산 없는 남성 시민, 여성, 외국인은 ‘수동 시민’으로 분류돼 정치활동의 제약을 받았다. 하지만 인권의 보편성에 따르면 누구도 인권의 ‘자격’을 논할 수는 없다. 이에 따라 인권의 보편성 원칙은 보편성의 예외에 속해 고통받아 온 여성, 외국인, 아동, 노인, 장애인, 성적 소수자 등의 사회적 약자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근거가 돼 왔다. 

저자는 “인권이 그저 좋은 것, 영원한 것, 불가침의 것”이라는 낙관으로 인권을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것을 경계한다. 같은 인권이라는 단어도 사람과 사회에 따라 다른 뜻과 목적으로 쓰일 때가 잦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의 ‘인권 선언’에 표현된 보편적 인권이 실은 일부 계급의 권리 표현에 지나지 않았던 것처럼 마르크스는 인권의 이중성에 대해 “본문에서는 자유를, 각주에서는 그 자유의 폐지를 규정”한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인권의 현실을 맞닥뜨렸을 때 인권은 끊임없는 분석과 비판, 상상력을 요구한다.

책에 담긴 인권문헌들을 되짚다 보면 우리나라 인권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저자는 미국 서부 의류공장의 여성노동자들의 외침을 담은 시 「빵과 장미」를 통해 ‘노동자’라는 이름표도 달지 못하고 해고의 불안과 터무니없는 임금에 시달리는 한국의 ‘비정규직’의 참담한 현실을 되돌아본다.
저자는 국가 내부의 인권 침해를 포착할 ‘감시견’으로서 독립적인 기구여야 할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두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무시한 촌극이라고 말한다. 한국 인권의 현실을 반추할 때 인권의 고전에 담긴 인권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인권의 이상을 정리한 ‘최고’규정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약속의 ‘최소’ 목록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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