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시인이 글을 썼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기업인에게서 용돈 명목으로 1천만원을 받은 사실을 민주당 의원들이 물고 늘어지는 꼴이 매우 못마땅했다고 한다. 김 시인의 눈에 작금의 인사청문회는 ‘천만원짜리 개망신’을 주는 자리에 불과했다고 보인 모양이다.

그래서 “천만원을 받았느냐”는 추궁에 정운찬 후보자가 간단히 “그렇다”고 답한 것이 김지하 시인에게는 ‘뜻이 분명한’ 태도로 보였고, 김 시인은 이 ‘진솔한 삶의 태도’에 대해 “위기를 뚫고 가는 사람은 저렇게 분명해야 한다”고 두둔한다. 그 당당함 앞에서 김 시인은 급기야 맹자(孟子)의 ‘명지(明志. 뜻을 분명히 밝히다)’를 떠올렸다고 고백한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법치주의’를 앙망하는 현 정부의 명지(明志)는 어떤지 살펴볼 만 하다.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는 사업가에게 돈을 빌려 20억원대 고급아파트를 구입했지만, 전직 대통령조차 죽음으로 내몰았던 '포괄적 뇌물죄' 적용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천 후보자는 이 사업가와 부부동반 골프여행을 다녀오고도 이를 부인하다 결국 물러나게 됐다. 국회에서의증언감정등에관한 법률 14조는 청문회 위증에 대해 1년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지만 천 후보자가 위증 혐의로 기소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국무총리 후보자는 물론 법무장관 후보자조차 위장전입을 저질렀지만 이들은 끝내 ‘법치’를 강조한다. 주민등록법 37조는 주민등록에 관해 거짓의 사실을 신고 또는 신청한 자에 대해 3년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법치'를 강조한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을 단죄했던 법은 결국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게 됐다. 우리가 지켜봐 온 법치주의는 이랬다.

이런 현실에서 등장한 ‘명지(明志)’는 그래서 황당하다. ‘궁핍하지 말라고’ 1천만원을 주는 저 낯선 문화는 물론 그 돈에 대한 거리낌은 커녕 오히려 ‘뜻이 분명한’ 명지(明志)의 태도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김지하의 명지(明志)가 저런 것이라면 또다른 명지(明志)는 제갈량(諸葛亮)의 것이다. 그는 “맑고 깨끗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고 마음이 평안하지 않으면 먼 곳에 이를 수 없다(非淡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고 했다. 뜻을 분명히 하려면 맑고 깨끗해야 한다는 얘기다. 

‘치사하게 푼돈이나 위장전입을 문제삼느냐’는 식의 정치적 물타기는 익숙한 어법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를 사소한 일이라고 ‘분명히 밝히는’ 태도다. 뻔뻔함을 당당함으로 치환하고 위법과 탈법을 진솔한 삶의 태도로 재탄생시킨 저 명지(明志). 한 나라의 고위공직자 후보에게 맑고 깨끗함을 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도대체 우리가 지키고 전수해야 할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김지하 시인이 대변해 준 저 ‘명지(明志)’의 무리들은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김병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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