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독립애니메이션, 해외에서도 호평받아
정부 지원·유통구조 빈약…사람들의 지속적 관심 필요해

‘장기하와 얼굴들’, ‘워낭소리’등으로 ‘얌전한’ 대중문화에 신선함을 수혈한 인디문화의 활발한 움직임은 이제 대중들에게 낯설지 않다. 그리고 지금 애니메이션에서도 자유로운 창작의 시도가 꿈틀거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행보가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재정 부족때문에 어려운 작품제작과 배급 유통 문제 등 그들의 도약에는 아직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기 때문이다.


독립애니메이션을 아시나요

독립애니메이션은 상업적인 애니메이션과 달리 개인 단위의 제작자가 창작한 것으로 제작자의 가치관과 개성이 느껴지는 애니메이션이다. 지난 9월 개최된 국내 유일 독립애니메이션 축제 ‘인디애니페스트 2009: 열렸다! 애니 good판’에서는 창작자의 고뇌를 풍자적으로 그린 최원재 감독의 「마스터피스」를 시작으로 다양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선보였다. 상영관에는 스토리 텔링을 시도한 감성적 작품, 클레이로 입체적이면서도 투박한 맛을 살린 작품등 이 상영돼 제작자의 의도와 제작표현방법이 그대로 비췄다. 축제를 기획한 최유진 사무국장은 “지금까지 독립애니메이션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 독립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제를 만들어 보자는 뜻에서 힘을 모아 시작하게 됐다”며 “작품을 생산하는 감독들과 작품을 보러온 관객이 직접 소통하는 자리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많은 마니아들은 독립애니메이션의 어떤 매력에 끌리는 것일까. 애니메이션 제작 동아리 ‘뮈다’ 회장 김예지씨(동양화과·07)는 “상업 애니메이션의 익숙한 내용 전개 등과 다른 신선함을 찾으면서 독립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자본권력에 구애받지 않고 각자의 창의성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표현예술이라는 점이 독립애니메이션의 장점”이라고 말한다.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의  도약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이 본격적으로 출현한 역사는 이제 겨우 20여년 정도  이며, 활성화된 지는 5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현재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은 다양한 창작 작품으로 국내뿐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의 역사는 1967년 신동헌 감독의 국내 최초 극장용 애니메이션 「홍길동」이 개인 창작 작품으로 인정받은 일반 애니메이션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민주화 운동이 활발했던 1980년대에는 대학생과 노동자의 메시지를 담는 매체로 활용되면서 상업적 애니메이션과 차별되는 독립애니메이션이 탄생했다. 하지만 장비와 기술이 부족해 소규모 제작이 주를 이룬다.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나기용 회장은 “1990년대에는 필름, 카메라 등의 소유가 어려워 학교에서 작품 활동하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곤 개인적으로 작품을 만들기 힘들었다”며 “상영 전용관도 없어 새로운 미술 운동을 추구했던 사람들이 모여 인사동 화랑에서 상영하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인권, 환경, 소외 등의 사회문제에서부터 개인의 가치관과 상상력 표현에 이르기까지 내용이 광범위하게 다양해진 것은 2000년대 이후”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2000년, 두 발로 걷는 개와 집에서 쫓겨난 고양이가 칵테일 바에서 나눈 이야기를 다룬 「존재」가 처음으로 독립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상을 받고, 6살짜리 아이가 생긴 늑대아빠의 고민을 풀어간 「아빠가 필요해」, 비 오는 날 우산이 망가진 소녀가 개구리와 만나 경험한 일을 동양화의 필치로 표현한 「비오는 날의 산책」이 연달아 해외 수상을 하며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이 진일보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더불어 맛있는 호박전을 만드는 할머니 댁에서 벌어진 납치사건을 다룬 「호박전」이 DVD로 출시되면서 독립애니메이션은 상업적으로도 가능성 있는 분야임을 증명해 이후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은 고공행진 중이다.

제약 없는 창작환경을 꿈꾸며

하지만 독립애니메이션의 앞길에는 아직 헤쳐나가야 할 장애물이 많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는 작품당  최대 2천만원을 지원하나 안정된 작품 제작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2007 인디애니페스트 관객상을 수상한 「천년기린」의 원종식 감독은 “연간 100편이 넘는 작품 중 학교 측지원을 받은 학생들 작품이 반으로  순수하게 개인의 부담으로 작품을 만들기는 어렵다”며 “그룹으로 제작 시 지원비가 작가나 스테프에게 돌아가 정작 감독은 다른 직업을 구해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또 정부 지원이 작품성보다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춰 충분히 자립할 수 있는 작품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정부가 성과 만들기에만 급급한 거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원종식 감독은 “제작자들이 체계적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와 같은 사업이 확대돼 작품성 있는 단편이 애니메이션이 중·장편 애니메이션으로 확대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배급 유통구조 역시 빈약해 대중과의 소통에도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국내 최초 애니메이션 전용관 서울애니메이션센터와 인디스페이스, 인디스토리 외에는 전문  배급사조차 전무하며, 전문 마케터 또한 부족하다. 배급망을 확보하고 마케팅을 강화하는 방안이 추진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나기용 회장은 “영화보다도 비주류로 인식되는 애니메이션은 독립영화보다도 영화관 상영이 더 힘들다”며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만이 독립애니메이션 발전의 원동력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세형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애니메이션과)는 “상업적 이익만 추구하기보다는 개인의 창의성과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독립애니메이션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 독립애니메이션 산업의 기초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며 “내부적으로는 독립애니메이션 종사자들의 협력을 도모해 독립애니메이션의 창작활동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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