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열린 두 사진전의 여운이 특별하다. 「20세기 사진의 거장전」과 「배병우 사진전」의 작품들은 회화의 그늘을 벗어난 사진만의 독창적인 예술의 경지를 선보인다. 가을의 정취가 깊어져 가는 10월, 새로운 미감을 선보이고자 지칠 줄 모르는 시도를 계속해온 사진의 매력 속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20세기 사진의 거장전」에서 만나는 거장의 숨결

우울한 튤립
인간의 ‘본다’는 행위는 단순히 망막에 들어온 외부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 이상을 의미한다. 인간은 자신의 눈을 통해 인식된 세계에 자신의 가치관과 사상을 투사해 새로운 세계를 재창조한다. 근대가 만들어낸 문명의 이기인 사진은 시대의 눈이 돼 새로운 근대를 ‘본다’. 초기의 사진은 대상을 포착해 단순히 재현하는데 머물렀지만 사실 너머 진실을 추구한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실험은 새로운 근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처럼 20세기 초 파리의 참모습을 렌즈에 담아낸 작가들의 「20세기 사진의 거장전」은 ‘사진이 어떻게 시대의 눈이 돼 왔는가’라는 의문의 답을 쥐고 관객을 기다린다.

오는 29일(목)까지 예술의 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20세기 초 파리에서 활동한 앙드레 케르테츠, 브랏사이, 만 레이, 드니즈 콜롱, 로베르 두아노 등의 작품이 준비돼 있다. 이들은 사진이 독자적 예술로 인정받도록 대상을 왜곡하고 단절하는 등 새로운 시도들을 감행하며 예술로서의 사진을 위한 실험에 몰두했다.

특히 거장들의 거장이라 불리는 앙드레 케르테츠의 「우울한 튤립」이 눈에 띈다. 이 작품은 시들지 않은 튤립의 고개를 떨어뜨려 왜곡된 모습으로 이를 변형시켰다. 고개를 떨어뜨린 튤립이 전하는 우울한 감정은 실연당한 여인의 모습만큼이나 슬픈 정서를 전한다. 익숙한 대상에서 낯선 정서를 발견하는 신선한 구도와 발상이야말로 아방가르드 정신의 정수라할 수 있다.

나의 고양이
다중노출기법을 이용해 최초로 이미지 합성을 사진예술에 도입한 완다 율츠의 「나와 고양이」 역시 당시 아방가르드 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자신의 얼굴과 고양이 얼굴을 합성한 이 작품에서 정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두 눈동자는 보는 이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완다 율츠를 비롯한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보여준 실험적 시도들은 현대 사진예술 분야에 사용되는 모든 기술의 기원이 됐으며 단순한 시각효과를 넘어 사진 속에 작가의 색채를 드러내는 현대 사진의 독창적인 시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시작된 사진예술은 전통적인 가치에서 벗어나 근대의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기 위한 여정이었다. 이들이 보여준 작품 세계는 삶 속 모든 우연이 예술이며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모든 찰나가 결정적 순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파리의 일상적인 모습을 포착해내고자 했던 작가 로베르 두아노는 “일상의 경이로움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그 아무리 훌륭한 영화감독이라 할지라도 당신이 길에서 접하게 되는 우연의 연속들을 필름 속에 담지 못할 것”이라 말했다. 일상의 모든 우연은 그들의 작품 활동의 근원이었으며 그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마주한 빛의 세계는 현대 사진예술의 새로운 빛을 열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들이 빚어낸 빛의 예술에 시선을 멈춘 채 빛의 세계를 마주해 보자. 입장료는 5천~8천원.

<문의: 예술의 전당 디자인 미술관(325-1077)>

「배병우 회고전」 렌즈가 포착한 한국의 미감

소나무
사진은 카메라로 그리는 빛의 그림이다. 같은 피사체라도 빛을 어떻게 담아내느냐에 따라 사진 속 사물은 전혀 다른 형태로 탈바꿈하고 새로운 의미를 품는다. 사진작가 배병우는 빛을 담아내는 자신만의 방법으로써 선과 형태를 부각시켜 대상에 대한 관찰자의 주관을 표현했으며 이를 통해 동양의 미감이 살아있는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사진을 찍어 왔다. 수십년간 한결같이 ‘한국적인 미’를 추구하며 자신에게 가장 친숙한 소재인 소나무를 렌즈에 담아온 ‘소나무 작가’ 배병우. 그의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오는 12월 6일(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소나무를 비롯해 유년기의 향수를 품은 고향의 바다, 부드러운 능선을 포착한 오름, 자연미와 인공미가 어우러진 창덕궁 등 그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모두 만날 수 있다. 2006년 스페인 정부의 요청을 받고 촬영한 「알함브라 궁전」처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이는 작품도 눈에 띈다.

그의 작품은 절제된 명암 속에서 형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소나무 사진은 소나무의 곧고 굵은 외곽선이 강조되는데 보통 사진촬영에서 꺼리는 역광을 이용해 선과 형태로 표현되는 세계를 포착했다. 이는 안개가 살포시 덮인 새벽의 신비로운 어스름 속에서 더욱 돋보인다. 이같은 기법은 피사체와 배경의 명도가 비슷하면 대상이 흐릿하게 찍히는 원리로 그의 조약돌 사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카메라와 가까이 있는 조약돌만이 제 형태를 어렴풋이 드러내고 나머지 사물은 사진 속 여백으로 스며드는 효과 덕에 그의 사진을 마주하는 관객은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렇듯 선조들이 소나무를 통해 나타내고자 한 굳은 지조와 절개, 그리고 여백이 주는 여유와 흥취는 배병우를 통해 근대 기술의 산물인 사진으로 구현된다. 이런 독특한 결합에 대해 국립현대미술관 박영란 학예연구사는 “배병우 작가는 작품마다 한국 고유의 미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조형언어를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벌써 환갑의 나이지만 배 작가는 여전히 사진 촬영이라면 야산에서의 철야도 서슴지 않는다. 미명에서 빛이 감도는 찰나를 포착하기 위해서다. 고심 끝에 그가 그려낸 것은 무엇이었는지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전시 기간에는 관람객의 이해와 감상을 돕기 위해 작품설명회가 매일 오전 10시부터 8시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운영된다. 입장료는 6천원.

<문의: 국립현대미술관(2188-6000)>

조약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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