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성, 경쟁력 확보 위해
법인화는 불가피해 보여
서울대 시대적 사명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

김건식 교수
법대 학장
법대 전문대학원장
때늦은 법인화 논의의 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공식적 의결기구인 학장회의와 평의원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법인화법안에 대해서 직원노조와 학생회는 물론이고 교수협의회까지 나서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견해대립의 이면에는 보직교수와 일반교수 사이의 시각차도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로스쿨 도입을 계기로 갑자기 행정일선에 뛰어들면서 국가기관의 일부라는 서울대의 지위가 얼마나 운신의 폭을 좁히는지를 절절하게 깨닫게 되었다. 정부예산을 새로 확보하는 것은 거의 올림픽 메달을 따는 것만큼이나 집념과 재주를 요한다. 겨우 확보한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는 데에도 제약이 따른다. 직원을 늘리는 것은 교수증원보다도 어렵다.

이런 처지다보니 학교가 나아갈 방향을 잡고 구성원들을 지원하고 독려하는데 써야할 관심과 에너지를 정부부처와 국회를 출입하는데 소모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현행 체제는 구성원의 현실안주를 부추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최근 우리 대학이 국제적 평가에서 47위를 차지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족쇄를 찬 채로 대학간의 국제경쟁에서 달음질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학교행정의 경직성에 절망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이 물음에 낙관적인 답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법인화가 만병통치라는 말은 물론 아니다. 독립성 훼손, 기초학문 위축, 등록금 상승 등 법인화가 초래할 폐해에 대한 우려도 일리가 없지 않다. 또 법인화 이후에 정부가 반드시 우리 기대수준으로 재정지원을 늘릴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법인화에 대한 불안의 밑바닥에는 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깔려있다. 문제는 그러한 불신을 완전히 불식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다소라도 독립성 훼손을 걱정하지 않는 서울대인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가 이제까지 어느 정도 독립성을 누려왔던 것은 국가기관의 일부였기 때문은 아니다. 서울대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견제한 것은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가 차지하는 사실상의 위상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법인화가 우리 기대와 달리 서울대의 위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볼 근거는 찾기 어렵다.

기초학문 위축을 예언하는 것도 다분히 패배주의적 발상으로 여겨진다. 과연 세계적인 명문대학 중에서 기초학문분야를 포기하고서도 그 지위를 유지한 대학이 있는지 묻고 싶다. 등록금 상승에 대한 우려도 단선적인 감이 없지 않다. 그간 우리 대학의 등록금 인상을 억제해왔던 여러 요인들이 법인화가 된다고 해서 바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택한 법인화의 길이 불안요소를 안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법인화를 포기하는 결정도 위험을 수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번에 법인화를 미루더라도 나중에 원한다면 언제든 법인화를 달성할 수 있을까? 그 때에는 지금보다 좋은 조건으로 법인화를 실행할 수 있을까? 나중에 모든 국립대의 법인화를 강제하는 법이 통과되어 타율적인 법인화의 길로 내몰릴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이런 물음에 대해서 누구도 확실히 답할 수 없는 처지에 법인화의 포기가 반드시 신중한 결정이라고 볼 수도 없다. 비록 모두가 100% 만족할 내용은 아니지만 법인화법안이 우리가 크게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제는 법인화에 대한 다양한 우려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서울대의 시대적 사명을 뒷받침하는 내용의 법인화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힘을 모아야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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