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 민주주의에 꼭 필요한
현대판 암행어사 국정감사
일시적 이벤트가 아닌
지속적 감시와 심판으로 이어져야

유병준 학술부장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그중에서도 국민이 자신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등을 뽑는 대의제라는 형식으로 민주주의를 구현한다. 그런데 모두가 알다시피 여기에는 한 가지 치명적 약점이 있다. 한 번 뽑아 놓으면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그저 4년 혹은 5년 동안 넋 놓고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감시와 처벌은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필수적이다.

다행히도 국회는 국정 전반 혹은 국정의 특정 사안을 조사할 수 있고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 특별위원회 또는 상임위원회로 하여금 국정의 특정사안에 관해 조사할 수 있다. 현대판 암행어사. 이것이 국정감사다.(그들은 암행어사가 될 수도 있고 심판받는 변사또도 될 수 있다)

최근 국정감사로 온 나라가 들썩인다. 아니, 온 공무원들이 들썩인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여야 모두에게 공격을 받고, 정운찬 총리 역시 다시 한 번 인사 청문회 2라운드를 치르는 듯하다. 한편 국방부 국정감사에서는 군 복무에 따른 가산점제도 논의를 부활시키기도 했다. 지난 1999년 헌법재판소가 남녀 불평등 제도라며 위헌 결정을 내려 폐지됐던 것을 무슨 이유에선지 서둘러 부활시키려는 모습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올 사람 없다는 말도 사실이지만 털어서 금(金)단지 안 나오는 공무원도 없는 것은 지나친 억측일까. 고위 공무원에 대한 암행감찰을 주로 맡아 ‘공직사회의 암행어사’로 불리는 곳인 공직윤리지원관실 역시 국정감사에 발목을 잡히기도 했다. 암행어사가 암행어사에게 잡히는 꼴이라니.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국정감사에 걸린 비리를 얘기하는 것이.

국정감사는 매년 그리고 20일간 시행된다. 매년 그리고 꽤나 오랜 기간 시행되는 이 일은 그리 녹록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국정감사 때가 공무원이 가장 바쁜 철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1년에 1번하는 국정감사를 4년에 1번꼴로 줄이자는 얘기가 나올까. 그만큼 국정감사에 소요되는 비용과 에너지가 많다는 말이다.

그래, 여기까지는 좋다. 탐관오리의 비리는 밝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그 후엔? 펀치를 날리는 사람도, 그 펀치를 막아내는 사람도 기진맥진한데 이 경기가 끝난 뒤에는 무엇이 남는가.

인사 청문회에서 여당 내부에서조차 도덕성과 자질을 문제 삼은 이귀남 법무부장관 후보자와 백희영 여성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도 강행됐다. 청와대는 정운찬 총리 인준 후 “신임 총리가 나라의 국격(國格)을 높이고 민생을 살피는 등 국정 현안을 푸는 데 큰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격을 높이는 것이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최근의 지지율 상승에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인 듯하나 ‘540만 표’ 차이에 취해 마구잡이식으로 밀어붙였던 정권의 출범 초기를 연상케 한다. 혹시 국정감사도 그냥 이렇게 끝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걱정이다. 암행어사의 감시는 있되 심판은 없는 것이 아닐지.

이런 구호가 있다. 대한민국 국회, 바로 당신이, 아니 우리가 주인이란다. 그런데 왠지 이런 종류의 말 가히 낯설지 않다. 용산 참사 건물 앞을 가로막던 경찰차에 ‘시민의 친절한 친구’가 적혀 있던 것이 선명히 기억난다. 말뿐인 말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한 주인이 되려면 국정감사가 그저 한바탕 정치인 싸움으로 끝나게 해선 안 된다.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설명한 ‘전방위 감시체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끝내는 기억해야 한다. 그들을 다시 우리 손으로 투표하는 날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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