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2000년대 문학계를 결산하다

사회 부조리 고발하던 근대문학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찬·반 논란, 문단 문제 성찰 계기도

문학은 시대의 거울이다. 한국 문학이 1980년대 사회 부조리를 폭로하고 1990년대 인간 내면의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면 2000년대 한국문학은 소재와 형식 측면에서 한층 다양화됐다. 문단 내적으로는 미학적·실험적 시도가 늘어났고 기존 작가들의 작고·은퇴로 세대교체가 나타났다. 문단 외적으로는 장르 문학의 약진과 웹진 등의 인터넷 매체 활용이 2000년대 문학을 풍성하게 했다.

『대학신문』은 지난 10년의 한국 문학을 논쟁과 키워드 중심으로 정리해 한국 문학계의 변화와 그것이 반영하는 시대상을 알아보는 연재를 마련했다. 각 연재에서는 ‘근대문학의 종언 논쟁’을 비롯해 2000년대 등장한 신인 작가들의 작품 세계, 장편소설 대망론과 인터넷 활용, 장르문학의 약진 등에 대해 짚어본다.


민주화 시절 사실주의 소설은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바람직한 사회상에 대한 치열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거리로 나선 청년들의 손에 들린 소설은 단순한 문학 이상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이들 소설 중 상당수는 교과서에 박제돼 입시를 위한 분석 대상이 됐고 이제 대중은 소설에서 문제의식보다는 재미를 기대한다. 대형서점과 도서관의 인기 도서순위는 가볍고 자극적인 소설이 구가하는 인기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일본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이 제기한 논제인 ‘근대문학의 종언’은 여기서 출발한다. 논쟁은 가라타니가 2003년 긴키 대학에서 한 강연을 2005년에 단행본 『근대문학의 종언』(『종언』)으로 펴내면서 대두했다. ‘근대’는 18세기 국민국가 등장이후를 지칭하며 ‘근대문학’은 이 시기에 주목된 근대소설을 가리킨다. 소설은 중세까지 평민의 감성적 오락수단으로 폄하됐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공화정이 수립돼 평민의 지위가 상승하고 이 시기에 감정과 상상력의 가치가 재조명되자 소설은 지적·도덕적 기능까지 갖춘 사회적 역할을 맡게 됐다.

‘종언’론은 소설이 근대 이후 가졌던 이러한 특별한 가치를 이제는 상실했다고 말한다. 근대에 소설은 사회상을 깊이 있게 재현함으로써 ‘사실주의’적 비교우위를 지녔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TV 등의 미디어 매체가 등장하자 소설은 이러한 비교우위를 상실하고 오락적 영역으로 축소됐다는 것이다.

‘종언’ 논쟁은 한국에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가라타니의 주장에 찬성하는 입장은 근대 소설이 특별한 가치를 상실하는 것이 시간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본다. 『종언』의 역자 조영일 평론가는 “원래 오락적 기능을 했던 소설이 근대라는 특수한 시간을 만나 특별한 역할을 했던 것이지 본래부터 문학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문학을 필요 이상으로 숭상할 필요도 없고, 문학의 위상을 지키려는 인위적 노력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 평론가는 ‘종언’에 대한 문단의 반발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본질 호도”라고 날을 세웠다. 한편 가라타니가 『종언』에서 언급한 한국 평론가 김종철씨는 “사회적 문제까지 떠안고 고민하던 문학이 협소한 범위로 한정됐다”며 문학을 떠나 생태운동에 투신해 『녹색평론』의 발행인으로 활동 중이며, 이는 ‘종언’의 증거로 거론되기도 했다. 

‘종언’론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이들은 한국 문학의 사회성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최원식 교수(인하대 한국어문학과,『창작과비평』전 주간)는 “한국 문학은 1990년대 이후 민주화와는 다소 멀어졌지만 새로운 사회 문제인 소수자 문제, 생태운동, 페미니즘 등을 탐구하며 사회적 역할을 계속한다”고 반박했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환경 또한 한국이 일본과 달리 문학의 사회성이 여전히 강한 이유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논쟁이 처음 제기된 일본에서조차 수십년만에 재출간된 프롤레타리아 문학 『게공선』이 인기를 끌며 ‘종언’이 가라타니 개인의 절망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편 논쟁에 대한 찬반 구도를 벗어나 한국 문단의 문제점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권성우 교수(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는 “가라타니의 주장은 사실 관계에 오류가 있긴 하지만 문학에 대한 근원적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며 높게 평가했다. 문학의 사회성이 현저히 감소하고 있다는 주장은 인정하되 그러므로 문학을 버려야 한다는 식의 결론에는 반대하는 것이다. 권 교수는 가라타니의 관점을 비판적 문학이 산출되지 않는 문학계 현실을 냉정히 진단하는 계기로 삼을 것을 촉구했다. 문단이 점차 문예창작과·국문과 일색이 되면서 문인들이 자신의 문학적 미래를 위해 주류 문단시스템에 순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문학이 출판 자본과 거대 언론 시스템에 종속돼 점점 소비재로 변모해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것이 비판적 문학의 출현을 막는 데 일조했다고 비판한다.

사르트르는 점차 보수화되는 사회에 비판적 시각으로 끊임없이 도전한다는 점에서 근대문학의 의의를 높이 평가했다. 사회 변혁·발전을 선도해 온 문학의 잠재력은 결국 사회성에 있는 셈이다. 그 때문에 최근 서점가를 점령한 칙릿·판타지 소설 등에 대한 우려가 심심찮게 지면에 등장한다. 이러한 시기에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고무적인 일로 보인다. 민주화처럼 굵직한 내용을 담진 않았지만 가족문제와 같이 현대에 새로 등장한 문제에 대해 사회적 발언을 하는 문학이 대중에게 다가갈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문학의 사회적 가치를 놓고 제기된 ‘근대문학의 종언’ 논쟁을 시발점으로 한국 문학계의 문제점이 해결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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