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인문학의 현실과 사회인문학의 과제

 

정승화 박사
연세대 사회학과

인문학 위기 속 정체성 모색

근래 인문학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용학문이 득세하고 대학이 취업을 위한 인력양성소로 변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염려와 함께 인문학이 상아탑에 갇힌 채 사회와 소통하지 못한 결과라고 자성하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학문의 분과체계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사회적 실천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문학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연세대 국학연구원은 한국사회 인문학의 위기를 진단하고 시장학문을 극복하는 화두로 ‘사회인문학’을 제시하며 지난달 25일 ‘인문학의 현실과 사회인문학의 과제’라는 주제의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국학연구원이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 지원사업’으로 10년간 진행하는 연구과제인 ‘사회인문학’은 21세기 한국사회의 현실문제에 비판적으로 대응하고 학문 간 단절의 벽을 넘어 인문학의 사회성 회복을 통해 인문학 본래의 총체적 학문으로서의 성격을 새롭게 되살리려는 기획이다.

삶에 가까워지는 사회인문학

백영서 교수(연세대 국학연구원장)는 「지금 왜 사회인문학인가」에서 “사회인문학은 학문의 분화가 심각한 현실에 맞서 파편적 지식을 종합하고 삶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감각을 길러주며, ‘삶에 대한 비평’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총체성의 인문학”이라고 말했다. 백영서 교수는 사회인문학의 확립을 위해 성찰과 소통, 실천을 중요한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총체성의 인문학에 대한 추구와 개별 분과학문 안에서의 혁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분과학문 안에서의 한 혁신 작업으로 역사학 분야에서 ‘공공성(公共性)의 역사학’을 제기했다. ‘과학으로서의 역사학’을 추구하는 근대역사학이 ‘앎’에만 집착하며 인간의 ‘삶’과는 멀어지게 됐다는 반성을 바탕으로, 백영서 교수는 공공성을 공통의 문제에 대한 열린 관심에 의해 성립되는 담론의 공간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되고 실천되는 소통을 포괄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공공성의 역사학의 비전을 공감과 일체화, 이야기와 역사비평을 강화해 과거 사실과의 만남을 통해 타자와 소통이 성립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으로 전망했다.

박명림 교수(연세대 지역학·한국정치)는 「사회인문학의 창안-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융합을 위하여」에서 사회인문학의 정립을 위해 인문학의 사회성 회복과 사회의 인문성 회복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문 내적으로는 인문학내 분과학문과 전공 사이의 단절, 사회과학과의 단절을 극복해야 하고 학문 외적으로는 사회와의 단절 및 세계와의 단절이 극복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박명림 교수는 인도의 써발턴 연구나 라틴아메리카의 종속이론, 일본 및 한국의 식민지 근대화론 등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례연구에서 출발해 보편적인 이론으로 확장한 연구들을 예시하며 한국 사회의 구체적 현실에서 출발하는 연구들이 개별성과 특수성을 넘어 보편적인 이론으로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학의 혁신에도 도움 줘야

김상환 교수(철학과)는 「인문적 상상력과 사회적 상상력」에서 “지식만 추구해온 인문학에서 벗어나 인문적 상상력을 키우는 ‘지혜의 인문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상환 교수는 헤르더·쉴러·훔볼트·횔덜린·헤겔 같은 18세기 낭만주의 시대 독일 인문주의자들을 되돌아보면서 인문적 상상력(인문학)과 사회적 상상력(사회과학)이 관계하는 고전적인 방식을 점검하고 서양의 인문학과 동아시아의 인문학을 종합해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교양의 전통을 수립할 것을 주장했다.

토론에서 김동노 교수(연세대 사회학과)는 인문학의 길 찾기가 과거 인문학의 전통에서 그 자원을 길어오고 있지만 현대사회의 세분화와 복잡화에도 대응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전망에서 모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사회인문학이 인문학의 자기완성을 위해 사회학을 포괄하려는 것이어서는 안 되고 현재의 ‘영혼이 없는 사회학’이라고 비판받기도 하는 사회과학의 혁신에도 도움을 주는 방안을 포괄해야 한다고 논평했다.

분과체계의 협애한 전문성을 극복하고 삶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비판정신을 회복하고자 하는 사회인문학의 실험과 정신이 한국사회에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학술운동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며, 동아시아에서의 인문(人文)의 어원이 『역경』의 구절 “인문을 살펴 천하를 변화시킨다”(觀乎人文以化成天下)에 있다는 사실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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